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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Dec 15. 2023

처음 김치를 담았다

김장 김치를 담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할머니가 같은 아파트의 아래층에 사시는데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물론 나도 이번에는 무거운 것도 들고 옮기고 김치를 치대는 걸 처음 해봤다.



우선 할머니 배추부터 도와서 열심히 양념장을 매우 꼼꼼히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할머니 하시는 걸 보며 따라 했는데 재미있었다. 재미도 있었고 엄마가 담으실 우리 집 김치양이 거의 두 배 가까이로 보였기에 빨리 할머니 김치를 끝내고 엄마를 지원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리 김치를 치댔는데 우리 김치는 절여져서 부피도 좀 작고 잘 발렸다. 할머니가 배추에 양념장을 치대실 때마다 왜 이리 배추가 안 절여졌을까 하실 때 나는 처음 해보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우리 배추를 해보니까 훨씬 잘 칠해지고 빨리 발리는 걸 알겠더라.



그래도 후닥닥닥 해치우다 보니 작년보다 훨씬 빨리 끝났던 것 같다. 4시쯤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두 분 다 장갑을 끼고 있었고 이번에는 나도 양념을 바르고 배추를 칼로 흠집내서 두 동강 낸다고 잔심부름을 하지 못했는데 아빠가 힘쓰는 일이나 갖다 주시는 일과 바로바로 설거지도 해주시고 바닥에 양념장이 튀면 바로 닦아주셔서 편했다. 굿 어시스턴트! 아빠는 그때그때 적재적소에 맞춰서 딱 딱 해주시는 걸 잘하신다고 평소에도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정말 잘 챙겨주셨다. 양념장은 바닥에 흘린 걸 바로 닦지 않으면 장판에 물이 들 수 있어서 닦아줘야 했는데 바로 닦아주시니 장갑을 안 빼도 하던 일에 집중해도 돼서 좋았다.



할머니 김치 양념장을 바를 때는 찢어서 먹을 생각을 미처 못했는데 엄마 옆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바른 거 바로 먹어도 되는 거였지.’ 하면서 먹어보니까 바르면서 계속 조금씩 섭취하게 되었다. 김장 김치 담그면서 김치를 째서 먹으니까 맛있었다.



가족 모두가 같이 하나씩 잡고 하니까 금방 끝나고 엄마와 할머니가 김치 담그실 때마다 고생이 많으시다는 걸 확실히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게 좋았다.




이전에 그 언젠가 엄마와 말싸움처럼 하게 됐을 때 한 번은 아빠가 엄마 편을 드시면서 네가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집안을 책임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정해진 돈으로 생활비를 계산하고 음식을 만들고 집안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게 너보고 당장 다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냐는 말씀이셨는데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고 옳았지만 그 당시에는 감정이 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까 남편이 아내가 하는 집안일이 힘들다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일까. 뭔가 안심이 됐다. 내가 믿고 같이 사는 배우자가 자식 앞에서 그렇게 얘기해 준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식 입장으로는 존중이 느껴져서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아빠가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게 좋았다.



그래서 혼난 사례였지만 뭣 때문에 말싸움으로 번졌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시간이 흘러 그때 들었던 말이 따뜻한 기억으로 떠올리게 됐다. 그래서 서로가 하는 일이 힘들고 수고가 많다고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일상에 보이는 모습들이 자식에게도 교육이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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