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라지는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붙들어놓겠다는 마음

by 릴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뭐 이렇게 뻔한 말을 하고 있냐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지만 내가 그걸 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무척이나 까마득하다. 늘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항상 내가 썼던 글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었다. 대체로 그 이유는 내가 쓰는 글은 남이 보기에 그럴듯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주류라기보단 비주류에 가깝다는 걸 느낀다. 이런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봐도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면 그게 정말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손으로 쓰이는 글들은, 항상 내 기준에 못 미치는 글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거밖에 쓰지 못하는 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글을 열심히 적다가도 완성하면 그 장을 쫙 찢어서 버려버리곤 했다. 내 글들을 다름 아닌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건 나였는데, 그런 일들을 멈출 수 없어서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나는 내 글들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쉽사리 찢어버리거나 버리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저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감성은 그때밖에 쓸 수 없는 것들이고, 그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건 개성일 수 있었고, 매력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들을 잘 정제한다면 정말 훌륭한 글이 완성될 수도 있다. 이제라도 그걸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씁쓸하면서도 기뻤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얻게 된 이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전에 내가 쓰고 싶었던 글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많이 달라져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경험과 시간이 다르기 때문일 터다. 그럼에도 후회가 남지 않는 건, 이제라도 이전에 썼던 글들이 미숙하고 편협하고 틀린 생각들이 아니라 그저 달랐을 뿐인 다른 생각들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거기에 조금 더 매끄러운 표현과 근거들을 모은다면 더욱 완성적인 글이 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때야말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당시의 감정 그대로를 담을 수 있는 것이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극복이란 이름 아래 시간이란 흐름 아래 망각이란 축복이자 저주 아래에 있는, 사람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의 순간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건 그것들을 아쉬워하던 마음과 그 순간순간을 메모해서 기록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진과 그림, 글과 책, 그리고 역사는 본질적인 부분에서 맥락이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지는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붙들어놓겠다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거기에 감응하고 습득해서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하고 싶다는 감정의 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사실 적시를 하기보다는, 그저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담고 싶었다.


문득 읽기에 편하고 내가 보기에 좋은 글들을 만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좋은 문장을 음미하듯이 되뇌어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을 때 좋았던 문장 한두 개쯤은 곱씹어보고 운율을 음미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그래서일까, 일상 속에서 좋은 문장이 생각나면 결코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돼버린다. 안타깝고 아쉬움마저 느껴져서 바로 그걸 작성하려고 하고 있으면 처음 생각났었던 그 운율은 사실 대부분 소실되어 버릴 때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남는 표현들이 있었다. 나는 잊어버리는 건 흘려보내고 남은 것들을 모아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한계에 참 아쉬움이 많았다. 내 기억력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때의 잊고 싶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이 무척 애틋해지며 소중해졌다. 다시 한번 거듭 말하지만, 망각은 저주이자 축복이다. 잊고 싶은 것들을 잊게 해서 우리를 살게 해 주지만, 잊고 싶지 않은 것들조차 잊게 해 그것들에 슬퍼지게끔 한다. 그러나 역시 축복인 쪽이 조금 더 와닿았던 것은 그래서 내게 있어 더 무척 애틋하고 소중해졌다는 뜻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르는 건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