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다른 게 아니라 너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빛과 말들에 네, 저는 그것도 몰라요 라고 하면 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종용하는 태도에 오랫동안 곧이곧대로 부끄러워했고 수치스러워했다. 그것도 할 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 얽매였던 이유는 그들이 요구했던 당황과 부끄러움, 수치스러움을 그대로 받고 느껴야 되는 줄 알고 그게 당연한 줄 알고 거기에 순응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마치 다같이 짠 것처럼 그걸 모르면 아주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고 그들과 나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에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덜떨어진 결함품이 되었다.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하고 이런 것도 할 줄 모르니까,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머저리가 되었다. 내가 그렇게 그 생각에 동조하는 동안에는 그건 사실이 되었다.
시간이 꽤 흘러서 다양한 매체를 접하게 되면서 책이나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된 건 그들이 말하는 잣대만큼의 ‘그렇게까지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뭔가를 모르면 그걸 알려고 노력해서 마구 채워놓으면 되는 거였고 어설프면 어설프게 살아도 되었다. 아무리 해도 정 안되면, 그건 그냥 그게 나한테 맞지 않는 거였다. 그럼에도 노력하고 싶고 포기가 안되서 내가 그런 마음이 든다면 나중에라도 기꺼이 성에 찰 때까지 시도해 보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그런 노력, 하기가 싫어진다면 그런 건 멈춰버려도 되었다. 그만둬도 된다. 그런다고 해서 하등 실패자나 패배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는 그런 걸 알게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대하기 어렵고 못 하는 걸 살짝이라도 내보이는 건 꺼려지고 멋쩍을 때가 많았다. 후유증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내 부족한 면을 보고도 조금 넘겨주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났다. 그래서 나도 조금쯤은 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 같지만은 않더라. 누군가가 말했듯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건 사람이었지만 무너졌던 상처에 잠시 멈춰서 공감해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약을 발라줬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사람들이 있어서 일어날 수 있었던 적이 참 많았다. 그들로 인해서 나도 내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크게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라고 생각해 가는 과정을 점점 겪고 있었다. 나한테 그것들이 조금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내가 그걸 대하는 태도와 말이 조금 더 담담해지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그게 내 인생 최대 약점이라도 되는 양 물고 늘어지던 사람들도 점점 그러지 않게 되었다. 내게 그게 더이상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으니 그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내가 반응할 필요도 없이 진심이 돼서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니까 항상 하던대로 툭툭 건들여보다가 점점 통하지 않았고 그들도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걸 눈으로 봤다. 이제 와서 그걸 굳이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잘한 게 없었으니까. 내가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냥 쓰레기였다, 아무 쓸모도 없는. 왜냐면 나조차 내 일면을 그렇게 생각했고 단정 지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제는 그만 문제삼지말고 털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