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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2- 어쩌면 너무 뻔했던 거야

 차에 타서 창문을 열면 바람에 얼굴이 잠긴다. 그걸 좋아했다. 거울이 크고 깨끗한 욕실이나 말끔한 마룻바닥 같은 것들도. 기지개 켜면서 발로 부비는 이불이나 보송한 살결도.

한밤에 만난 들개들은 목줄이 없었다. 그리고 또 여기에 없는 걸 말하자면 무척 길게 늘어놓을 수 있다.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들은 다 없다.


 맨발로 흙바닥, 돌바닥, 시멘트 바닥, 장판을 지나면 화장실이 나온다. 다시 돌바닥, 시멘트 바닥, 타일 바닥을 지나면 욕실이 나온다. 불편하니 그리운 것들이 많이 떠올랐다.  
어쩌면 너무 편했던 거라고 말했다. 그건 뻔한 말이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친절하고 경건했다. 이것도 뻔한 생각이었다.  

 얼굴은 벌써 익었다. 곁에 있는 너는 벌써 여길 편히 여긴다. 십 년쯤 전에 태국에 왔을 땐 이러나저러나 신났던 것 같은데 난 십 년 동안 뻔하게도 편했나 보다.
너는 틈이 나면 어떤 것들을 적거나 그리는데 나는 안 그런다.


 오늘도 볕은 좋았다. 너도 좋았다.
꿉꿉한 마음에 억지로 쓴다. 내가 전에 말했듯 쓰다 보면 알겠지 하면서.


-18.6.29. 두 번째 길/태국, 시사아속(sisa as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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