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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Feb 19. 2024

가슴 뛰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

술 취한 나의 진심 어린 고백

우리 가족은 토요일 저녁마다 집에서 맛난 음식을 해 먹고, 홈술을 마시곤 한다.

코로나 기간 외식이 제한되던 시절부터 이어온 일종의 우리 집 전통이다. 집에서 해 먹으니 돈도 덜 들고, 술을 마음껏 마셔도 집에 돌아갈 걱정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지난 주말에도 홈파티가 벌어졌다.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회, 문어, 굴튀김 등등 해산물을 한 상 차려놓고 화이트 와인을 꺼내어 마시기 시작했다.

빈속에 사르르 퍼지는 술기운은 나를 쉴 새 없이 떠들게 만들었다. 알딸딸하게 취하니 기분이 두둥실 올라갔고, 마찬가지로 얼굴이 빨개진 남편도 재미난 입담으로 오랜만에 많은 얘기들을 했다.


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회사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와 동료 이야기들을 하다가, 갑자기 욱하고 올라오는 내 속마음을 고백했다.


"나 회사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뜬금포 얘기였지만,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고백이었다. 

한 3년 정도 되었나?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남편과 딸은 놀라지도 않는다.

사실 지난주 내내 11시 넘어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퇴사하겠다고 매일밤 난리였다.

내가 여러 번 퇴사한다 말할 때마다, 예비 중1 딸내미는 이렇게 받아친다.


"엄마 그만두면, 나도 자퇴할 거야."


여기에 남편도 가세해 자기도 그만두겠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나 한 명의 퇴사로 인해, 딸은 필수교육도 못 받고, 남편까지 백수 되면 우리 집 다 망하게 생겼다.




이성은 나를 그만 말하라 붙잡았지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혹은 요즘의 커져버린 고민의 크기 때문이었는지 내 입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위한 공부를 해보고 싶어."


왜 나에게 퇴사가 필요한지 조목조목 나만의 이유를 들어 추가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 하는 일은, 분명히 예전에는 재미도 있고 동기 부여도 되었지만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나에게 일이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고,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인생의 큰 동기부여라고. 하지만 지금의 일에서는 의미를 찾기 힘들고,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고.


물론 내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들어주지는 않았다.

일은 그냥 누구나 다 하기 싫어도 참고 하는 거다, 공부도 똑같다, 일에서 의미 찾는다는 개똥철학 같은 소리 하지 말아라 등등... 여러 가지 말로 나를 타이르기도 하고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답답했다.

'나도 다 안다고,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라고'라고 속으로 외친다는 게 입 밖으로까지 나와버렸다. 


나의 퇴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남편과 다시 한번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나의 퇴사를 반대했다.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 두 번째는 내가 예전에 시도했던 퇴사 이후 보여준 우울증적 증상에서의 이유. 

내가 반짝이며 일하는 것을 진심으로 지지해 주며 집안일을 몽땅 도맡아 하고 있는 남편이다.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무섭겠지만, 내가 다음 직업을 제대로 못 찾아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집에 앉아있는 모습이 그는 가장 보기 힘들 것이다.


채 1년이 되지 않는 백수 경험에서 나는 생기를 되찾으려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 본질에 닿지 못해 다시 지금 직장으로 복귀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뛰쳐나온 직장 다시 들어가기였는데, 얼굴에 철판 깔고 재입사해 6년 넘는 세월 동안 다니고 있다.




나는 재차 남편에게 나의 지금 직장 생활이 불행하고, 그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고 얘기했다.

남편은 이번에는 진지하게 나의 얘기에 반응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네가 하려는 그 시도는 얼마나 간절한 거니?"


나는 내 인생을 바꿀 만큼 간절하다 대답했고, 남편은 여기에 조건을 붙인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 동안 새로운 시도를 위한 배움을 이어간다면 인정해 줄게. 간절하다면, 너의 모든 시간을 바쳐서 시도해 보고 증명해 봐. 쉴 거 다 쉬고 놀 거 다 놀면서 간절하다 말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이 얘기를 듣는데 가장 처음 든 감정은 당황스러움. 평일 내내 야근하다 지쳐버린 내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은 주말뿐이었는데... 주말마저 못 쉬면 언제 쉬려나.

별건 안 하더라도 주말은 주말인데. 이 즐거움마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느낌이 들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남편은 여기에 덧붙여 나의 시도를 해석해 준다. 

지금의 너는 회사가 싫어 도피처를 찾는 중이라고. 만약 간절하게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고. 단, 회사를 다니며 힘들게 시도해 보고, 힘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이 너무 좋아 계속할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맞다고.



처음엔 남편의 말에 황당하고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회사도 열심히 다니느냐 힘든데, 다른 것도 병행해서 같이 하라니 말이 되나 싶어서.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가 틀린 말을 건 아니더라.

퇴사에 대한 나의 심정도 어느 정도는 도피가 맞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간절함과 가능성도 별로 보여준 적은 없으니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다시 고3의 자세로 살아야 되나 생각해 보았다.

정말 다시 돌아가기 끔찍한 고3 시절이지만, 그때만큼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고 하나에만 몰두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간절함

그동안 잊고 살았던 단어이다. 바쁜 삶을 주어진 대로 그냥 살아내는 것도 힘들다 생각했다.

내가 새로 하려는 시도는, 나에게 얼마나 간절한 것일까?

생각과 말뿐이 아니라, 내 행동까지 표현된다면 간절함 맞겠지.


생각만 해도 힘들 것 같지만, 나는 간절함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고 올해를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언젠가 내가 하려는 시도도 부담 없이 브런치에 과거형으로 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며....


#글루틴 #팀라이트


PS. 글을 쓰는 지금도,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기 전에 주말마다 실컷, 미련 없이 놀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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