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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y 22. 2024

연구원이 아니라 회사원이어서 다행이다

비교상황에서 느낀 직업 만족도

고객사를 회사로 초청해 세미나를 진행했다. 기술집약적 제품을 판매하는 우리 부서에서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세미나를 개최하곤 한다. 보통 팀원들이 세미나를 준비하면 검토를 해주거나 조언만 얻는 역할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윗사람들의 잘못된(?) 의지로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져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세미나 진행을 리딩하고 준비사항을 챙기며 직접 사회까지 보게 되었다.


세미나 사회자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앉아 강의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회사에서 하는 세미나의 경우 노트북을 켜놓고 딴짓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기 힘들었다. 시간 조절도, 질의응답도 모두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은 정말 어려운 논문 그 자체였다. 주제가 그렇기도 했고 강사분들의 지식도 해박하고 깊었다. 그런 강의를 듣는 동안 느낀 여러 감정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 정말 어려워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연구원 안 하기 정말 잘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에 대한 불만이 많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세미나를 들으며 지금의 직업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 적성과 잘 맞는다는 생각까지 들어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처음 진학했을 때는 나도 꿈이 있었다. 관련 분야의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전공을 최대한 살려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도 연구원도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졸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실험결과와 거의 바닥나버린 내면의 동기까지 모든 게 최악이었다.

당시에는 절망했다.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까지 한 것 같다. 연구원이 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몰랐었다.


대학원 옆방 선배가 본인의 회사에 나를 소개해준 이후로 지금까지 17년간 회사원으로 살고 있다. 내가 회사에 취직한다고 했을 때, 교수님과 대학원 선배들은 약간은 짠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 같다. 대학원을 도망치듯 나와서 그랬을 테고, 회사원에 대한 직업 이해도가 부족해서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의 직무는 내가 해왔던 연구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썩어있었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었고, 친한 동료들을 만나며 즐거움이 증폭되었다.


대학원을 나오면 응당 연구원을 해야 성공한다고 믿었던 내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는데, 그 사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적성이란 경험해 봐야 더 잘 알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를 했을 때는 생각이라는 게 없었다. 무엇을 해야 될지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실험만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능력과 방향성과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이후 회사에 다니면서 내 의지라는 게 생긴 것 같다. 이걸 이렇게 해야 잘 되는구나, 조금 더 잘해봐야지라는 동기가 스스로 생겨났다.


물론 대학원 선배나 동기들 중에는 연구원이나 교수가 천직인 분들이 많다. 그분들은 정말로 연구를 즐긴다. 학문의 탐색에서 오는 순수한 재미를 오롯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분들 덕분에 과학계가 발전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나의 방향성은 달랐는데 그 사실을 회사원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으로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은 여러 일을 해보는 것이다.

당장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 경험을 쌓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진행하는 사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던지, 외부 봉사활동 기회를 이용하는 등이다. 

혹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은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기나긴 여정에 가깝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작은 도전을 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신이 나고 에너지가 나오는가, 혹은 반대인가에 대한 경험치를 쌓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믿는다.


내 직업이 천직이라 생각한 적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를 통해 내가 연구원을 하지 않고 지금의 직업을 가진 것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비교 상황에서 지금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간 상황이랄까.


직업과 진로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다.

그 길을 걷다 보면 결국 자기에게 조금 더 맞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응원과 함께...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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