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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ug 06. 2023

아듀 바이오, 혼돈의 백수 생활

업계를 영영 떠날 결심하기

다시는 이 바이오 업계에서 일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인연을 끊으리라 결심하고, 내가 꿈꿔왔던 커리어의 정점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1년간 일하면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받고 나가는 게 어떻겠냐는 매니저의 따뜻한 배려에, 겨우 1년을 채우고 그만뒀는데 마지막에는 살짝 할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감도 붙어 더 있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막상 여기서의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결국 사표를 던졌다.


경력 9년 중 벌써 세 번째 사표였다. 

사표를 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짜릿하다. 

사표 수리 이후 펼쳐질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는 무한 긍정의 필터가 씌워지고, 떠나는 이 회사에서의 생활마저 아름답게 왜곡되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첫 한 달은 정말 신났다. 여행도 가고 실컷 잠도 자고, 평소에 못 놀았던 걸 한 번에 몰아서 놀고 즐겼다.

그리고 허니문은 끝나버렸다. 나에게도 불안과 허무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연찮게도 남편마저 나와 같은 시기에 백수가 되었다.

하! 부부가 쌍으로 백수라니...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매달의 월급과, 출근할 직장, 둘 다 없어져버리니 무서웠다.




일단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뭔가 배울만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행정복지센터에서 진행하는 '아동미술심리치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사실 앞으로 영원히 월급 없이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걱정에, 한 달에 4만 원짜리 행정복지센터 강의 외에는 다른 학원은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평소 내가 관심이 많던 주제인 '심리'와 '미술'을 결합한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가 진행되며 나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 것 같다. 

매 수업마다 그림으로, 만들기로, 나를 표현하는 실습을 하는데, 나도 모르던 내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내가 계속 튀어나오고, 나는 그걸 처음으로 진지하게 발견하며 나에 대해 생각했다.


강의가 재미있어서, 강사님이 출강하는 주변 다른 동네의 행정복지센터의 다른 강의까지, 일주일에 세 번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자격증도 땄다.



'아, 이게 내 길인가? 왜 이렇게 재미있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직업과는 다르게 생계에 대한 아무런 압박 없이, 내가 좋아하는 미술을 하며 마치 취미처럼 이걸 접하게 돼서 그런 것 같다.


수강생 중에는 실제 상담사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몇 개월동안 그분들을 지켜보며, 과연 나도 이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혹은 속에 있는 얘기들을 미술로 치유해 준다는 건, 나에게는 오은영 박사님이 되는 것과 같은 너무나 멋진 일로 보였다.


항상 아이들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는 고아원 원장님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내가 적절한 도움을 주어 그들이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 느끼고, 사회에서 꿈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아동미술심리 치료사는 그런 내 미래에 다가가는 하나의 좋은 커리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불안과 걱정이 내 발목을 잡았다.

미술이나 심리 쪽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대학원도 안 나왔으며 이론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데, 내가 아무리 자격증을 따서 여기저기 출강하고 상담하러 다닌다고 해도, 한 달에 최저 생계비를 벌 수 있을까?


이걸 직업으로 삼고 잘하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정말 아직 아이들 그림을 봐도 해석이 어렵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걸려온 전 직장 동료의 일자리 제안에 결국 나는 자발적 백수 생활을 끝내고, 정말 꼴도 보기 싫었던 내가 몸담았던 업계로 다시 컴백했다.


지금 내가 다시 시간을 되돌려 아동미술심리 치료사를 꿈꿨던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치열하게 질문했을 것 같다.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싶은가"

그 당시의 나는 'why'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아, 'what'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다.


나만의 소명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반짝반짝 빛이 난다.

Why가 분명하고 확고하면, 어떻게든 why를 이룰 수 있는 how와 what을 찾고, 흔들리고 주저앉더라도 나만의 북극성을 따라갈 수 있다.



당신의 Why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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