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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ug 06. 2023

관성의 법칙, 다시 회사로

정신 차려 보니 다시 회사원

감사했다.

전 직장의 새로 생긴 자리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제안에.


나는 자존심이나 쪽팔림 보다는, 아직도 떠난 나를 다시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죽어도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이 업계에 대한 영원한 안녕을 고했는데, 전화 한 통에 그런 결심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백수 생활에서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돈이 없다는 현실보다 소속감이 없어졌다는 생각이었다.

이대로 간단한 번역일이나 하며 프리랜서로 살아볼까, 아니면 동네 가게에서 알바를 해볼까, 별별 생각을 다 해봤는데, 내 미래는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내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고, 서로 같은 주제로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와 팀이 절실했다.


행정복지센터 강의를 들으며 친해진 나이 많은 언니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신기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떠한 소속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 예전에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 무언의 눈빛으로 인사하는 순간, 꾹꾹 눌러왔던 '쪽팔림'에 대한 불안이 급증했지만, 매일 출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백수 생활과 비교해서 훨씬 좋았다.


아시아 담당자였다는 허세를 다 내려놓고, 신입 사원의 마음으로 적응하려고 했다.

잘 모르던 분야였고,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해 기대치나 니즈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바닥부터 시작하기 좋았다. 


내가 다시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매니저가 바뀌고, 조직개편이 되고, 작은 조직에서 오래 다니시던 분들이 그만뒀다. 

조직 상황이 어떻듯, 나는 이 조직의 중고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아서 최소 1년은 버티고, 내가 해야 할 역할과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자유롭고 타인에게 포용적인 조직 문화와 처음 해보는 새로운 일에 재미를 느끼며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평소 접해보지 않았던 잘 모르는 분야의 기술과 업무를 완벽히 파악하고 담당자로서 리딩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으니,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성장이 계속되며 팀 내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 단위의 업무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더욱 일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펀딩을 위한 제안서를 만들어 피칭하고, 관련된 프로젝트 팀 멤버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에게 흥미로웠고,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프로젝트 참여가 재미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기대감, 관련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프로젝트를 성장시킨다는 느낌, 다른 누군가를 설득할 때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계속 핵심을 생각해보게 하는 훈련 등이 나를 설레게 만든 것 같다.


사실 나에게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관심 밖이었고,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과정 자체가 더 큰 즐거움이었다.


아시아 담당자였을 때의 나는, 주눅 들고 자신감이 없어 의견을 제대로 내지 못했는데, 프로젝트를 하며 쌓은 경험으로 자신감도 회복하고 내가 어떤 일을 왜 좋아하는지도 서서히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 업무가 일치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내가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발견하려면, 내가 싫어하는 것 열 가지쯤은 해봐야 이게 과연 내가 원하던 일이 맞았는지, 적성과 일치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의 직장 생활이 지옥이라고 생각된다면, 적어도 한 가지의 내가 '싫어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체크리스트에 추가해 보자. 


그리고 계속 나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왜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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