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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연구팀에 이메일을 보냈다. 트라우마 역할앱이 과연 증상이 있는 환자의 병을 호전시켜주었는지, 호전시켜주었다면 몇 퍼센트인지, 앱에 접속한 시간은 평균 몇 시간이 가장 적합한지. 환자들의 사용 후기도 보내달라고 했다. 또한 트라우마 역할앱이 단지 놀이용으로 쓰이게 될 우려는 없는지. 그러니까 게임처럼 중독성이 있는지, 있다면 앱 사용권은 무제한이 있어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과 함께 마감을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메일을 보낸지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답이 왔다. 대학 연구팀은 짧은 시간에 트라우마 소소앱을 상용화하기 위해서 조박사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관계자는 조박사팀에게 내 질문을 전달했다고 한다. 질문을 전달하고 얼마 후 마침내 조연희가 회사 로비로 찾아왔다. 예전보다 흰머리가 조금 나왔을 뿐 사실 내 얼굴은 그대로인데 반해 조연희의 얼굴은 목소리가 아니라면 못 알아볼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카페에서 대면한 조연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공들여 제 머리 위로 뽀뽀 오백 번을 해주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어요. 잠결에 헛간을 빠져나가는 당신을 못본 척 한 것도 이미 나는 어린시절의 나와 화해를 했고, 애도가 끝났기 때문이었지요. 독일에서도 가끔 당신 생각이 났어요. 좋은 동료들과 동료애를 느끼며 연구에 몰두할 때마다 당신을 만나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지요. 데이터의 정보는 모두 임의로 입력한 값이에요. 거식증이나 폭식증을 앓는 트라우마성 질환을 어떻게 하면 역할극에서 도울 수 있는지 탐색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감, 어투, 침묵할 시간까지 데이터화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제한 접속 권한이 필요했던 거지요. 당신을 찾기 위해 대학 졸업앨범을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이제 이렇게 얼굴 뵙고 지난날을 사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는 사내에서 가꾸는 오렌지 나무에서 오렌지 하나를 따서 그녀에게 건넸다. 달달하고 새콤한 과즙이 떠올라 침이 고였다. 그후로 업무적인 이유로든, 사적인 이유로든 더는 만나지 않았다. 자진 퇴사 후 내가 소원하던 동네 책방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하루종일 고양이와 함께 책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