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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만 더 있었어도 이렇게 냄새가 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4년제 장학금을 받는다고는 해도 생활비는 과외로 벌어서 해결해왔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몇 개월째 비상금으로 생활해오다가 친구 소개로 다시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내가 자기 방에 들어가자 코를 싸쥐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모욕은 질색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녀석의 방에서 나와 현관문을 밀고 나왔다. 간식을 준비하던 그집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잡지도 않고 난 학교쪽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심한 생리 냄새 때문에 나는 여학교에 다닐 때도 가끔 눈총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생리양도 많아서 생리를 할 때는 오래 앉아있으면 옷에 얼룩이질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고 특히 여름에 더 끈적이는 느낌을 참을 수가 없다. 하루 아홉 개 정도 필요한 생리대를 네 개로 써야해서 생리대 위에 휴지를 덧댈 때도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 휴지만 갈아주고 나오고는 하지만, 생리양이 많은 날은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분노로 아무 목적도 없이 달리다가 호수 구석에 있던 헛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외국인학교의 창문을 기웃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그가 입은 체크무늬 남방은 어린시절 나를 학대한 의붓아빠의 것과 너무 닮아있었다.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악취 때문에 어떻게 된 걸까.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일어나면 한동안 무력감으로 일어날 수 없는 나날들이 떠오르면서 몸이 뜨거워졌다. 의붓아빠가 나를 집에 가두고 학교에 못가게 한 여러 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여러 날 동안 지독한 두려움에 떨던 내 멍든 몸도 떠올랐다. 순간적이지만 외국인학교 교실을 기웃거리는 그를 질질 끌고 헛간에 던져버렸다. 헛간 문을 닫고 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니 옷만 의붓아빠를 닮았지 얼굴은 전혀 달랐다.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흰운동화 한짝은 반쯤 벗겨져있었다. 설마 죽은 건 아닐까 침을 삼켰으나 그의 가슴이 조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깨어날 때까지 구석에 포개져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손가락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제 곧 독일로 떠나야한다. 좋은 추억 하나 없는 이곳을 떠나야지. 오래 바랐던 일이지 않나. 그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런데 그곳에서도 한달에 한번씩 몸에서 나는 악취와 싸워야한다면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 날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이래서는 아무도 나와 가까이 하기 싫어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절망적이었다 나는.
그때 산부인과에 가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이런 고민을 상담할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식은땀에 젖어 깨어나거나 잠들자마자 가위에 눌리는 상태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의붓아빠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그가 쿨럭이며 깨어났다. 헛간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그의 옆얼굴의 윤곽을 드러나게 했다. 나는 의자에서 소리없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조금 전의 분노와는 별개로 내 트라우마를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그와 나의 역할극이었다. 그의 옆얼굴은 희미하지만 나를 구해준 국민 학교 담임선생님과 비슷했다. 의붓아빠에게 강금당했던 동안 결석한 나를 걱정해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아니면?”
“날 도와주면 좋겠어.”
“뭘.”
“복잡하지는 않아. 내 아이를 좀 같이 찾아주었으면 해서. 일종의 역할 놀이야. 난 어렸을 때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는데..”
“어떻게?”
“내 안의 아이가 아직 의붓아빠를 용서하지 않았어. 화해가 필요해. 억지로라도 화해를 하고 떠나야 꿈에서 안 볼 것 같아. 네가 내 의붓아빠가 되어 일주일 동안 나와 생활하면서 날.. 안아줄래?”
“난 아직 네 이름도 모르잖아.”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성은 그대로지만, 우리 과에서 가장 예쁜 연희의 이름을 댔다.
“연희, 조연희.”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