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납치되어 죽을 뻔한 사연을 소개하면 놀라자빠질 것이다. 하루는 대학교 안을 걷고 있었지. 대학 안에 외국인학교가 아직 있을 때 이야기야. 낮은 천정의 학사 건물을 지날 때면 나는 늘 창문 안을 신기하듯 들여다보고는 했어. 조별 책상이 있었지.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부르던 시절이었는데 한국 초등학교에는 없는 여유있는 풍경이었어. 그러니까 모든 게 갖추어진 교실이라고 할까. 조별책상 한가운데에는 두 개의 필통꽂이가 있어서 한쪽에는 풀, 가위가 한쪽에는 색연필이 가득 꽂혀있었지. 벽을 장식한 그림들은 훨씬 색채가 다양했고 말이야. 대학 안이 텅 비어 있던 시절이었지. 지금처럼 병원이 들어서지 않을 때였어. 울타리도 없고 경계도 없어서 어디부터가 외국인 학교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대학인지 모르던 예스러운 곳에서 산책을 하다 돌아오면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어.
그러다 대학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어도 아무도 학생증 같은 건 요구하지 않았어. 빈자리가 내자리였지. 그날도 할 일 없이 이리저리 걷고 있었고 어김없이 내 발길은 그 외국인학교로 향했고 밖에 서서 교실 안을 구경하고 있었어.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지. 그때 등뒤에서 누군가가 세게 내 목을 잡아챘어. 단추가 목에 박힐 듯이 숨이 가팠지. 어어, 이러다가 죽겠는가 보다 했지만, 소리를 지를 수 없었어. 너무 갑작스러웠고 공포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숨을 쉴 수도 없게 된다는 걸 알았지. 난 질질 끌려갔어. 이끼였지. 나를 미끄러뜨린 건. 내 흰운동화는 어이없게도 이끼의 얼룩으로 진초록물이 번지고 있었어.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눈을 떠보니 호수 곁에 있는 창고에 눈을 치우는 삽이랑 낙엽을 모으는 갈고리 빗자루랑 망가진 의자 같은 것과 함께 누워있었어. 닫힌 문틈 사이로 아직 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 무서워서 움직일 수 없었지. 난 이곳이 창고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어. 지난 겨울 이곳에서 단기 알바를 했었기 때문에 창고에서 청소도구를 꺼내기도 하고 돌려놓기도 하고 했거든. 그때 발소리가 났어. 나는 침을 꿀꺽 삼켰지.
“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낯선 목소리가 말을 걸었어. 새벽에 아스팔트를 청소하러 다니는 살수차에서 나는 그런 목소리를 가진 사내였지. 나는 이제 죽었구나, 아니 어쩌면 이런 끔찍한 날이 오기를 기대했는지 모를 나의 어둠과 마주쳤어. 나는 인생에서 한번쯤 가진 자가 되고 싶었고, 역전 승리를 해보고 싶었으며, 영웅이 되고 싶었지. 그런데 그 열망은 일그러진 채 늘 좌절되고 말았어. 오히려 잘 된 일이야. 내 손으로 내 인생을 만들면 되니까.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똑바로 바라보았어. 떨렸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지. 이 순간 누가 더 두려운지 알고 싶었어. 그가 어둠 속에서 다시 말했어.
“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아니면?”
“날 도와주면 좋겠어.”
“뭘.”
“복잡하지는 않아. 내 아이를 좀 같이 찾아주었으면 해서. 일종의 역할 놀이야. 난 어렸을 때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는데..”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온 사람은 그가 아니고 그녀였어. 덩치가 컸지. 목소리는 맞아 살수차가 쉬쉬 하면서 죽은 도시를 청소하고 다닐 때 내는 소리였어.
“난 지금까지 그 사실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어.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도 다니게 되었고,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곧 이곳을 떠나. 그런데 갑자기 매일 밤 의붓아빠에게 맞았던 꿈을 꾸면서 아침이면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공포에 질려있어. 만약에 내가 독일에 가서도 그 꿈을 꾼다면 어쩌나 몹시 두려워. 네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
“어떻게?”
“내 안의 아이가 아직 의붓아빠를 용서하지 않았어. 화해가 필요해. 억지로라도 화해를 하고 떠나야 꿈에서 안 볼 것 같아. 네가 내 의붓아빠가 되어 일주일 동안 나와 생활하면서 날.. 안아줄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거절을 하게 되면 얘는 날 순순히 풀어줄까? 아니면 다른 친구를 소개시켜준다고 할까? 그런데 난 아직 이름도 모르잖아.
“난 아직 네 이름도 모르잖아.”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를 염탐하듯 쳐다보던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연희, 조연희.”
“그래. 연희야. 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러니까 역할극을 하자 그 말이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날 어떻게 할 생각은 없구 말이야.”
그녀가 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2.
조연희와의 사건 이후 나는 등뒤에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군대에 가서도 여성 같은 외모에 선임들은 가끔 등뒤에서 날 안아보고는 했는데 나는 그들이 상상도 못할만큼 경기를 일으켜서 그들을 아연실색하게끔 했다.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나를 놀릴 셈으로 강한 힘으로 뒤에서 끌어안았던 선임은 결국 기절을 하고 널브러진 내가 간질 발작을 일으킨게 아닌가 싶어서 입에 수건을 급히 물려주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조연희와의 악연으로 한동안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좋아하던 숲길 산책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는 해도 조연희의 살수차에서 나는 소리와 같은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앱개발자로 일하는 동안 나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이메일이나 전화통화로 업무상 조언을 들었고, 회의를 해왔다. 코로나로 갇혀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정신상담 앱을 개발하여 신경정신과 처방이 있는 환자에게는 무료 상담 및 무료 처방을 지원해주도록 결정이 났다. 예산이 잡히고 여러 회사가 앱 샘플을 납품하며 경쟁을 하는 동안 우리 회사 앱이 거의 마지막 완성단계에 있었다. 그 남은 단계란 대학 연구팀과 함께 트라우마 임상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 연구팀이 선별한 팀들의 트라우마 상담앱 중에서 역할극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상담 후 몇 주 동안의 혈압 체크와 심박수, 우울의 정도, 사회생활 여부 차트와 대조하면서 1군 전문직 파일을 보고 있었다.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는 조연희의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