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마리아와 함께라면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쇼파 건너편에 앉아서 대화를 하던 중 내 옆으로 앉으면서 산부인과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생리양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빈혈로 고생을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달에 하루이틀 정도 나는 나태한 학생이 되어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다가 한낮이 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산부인과 대기실에 나란이 앉아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진찰실에 혼자 들어가 누웠을 때는 너무나 긴장을 해서 온몸이 경직되었다. 담당의는 그런 나에게 괜찮다고, 처음에는 누구나 두려울 수밖에 없다고, 아마 밖에 기다리고 있는 엄마도 처음에는 그랬을거라며 다독여주었다.
우리는 일정표를 보며 루프 시술을 받을 날짜를 정했다. 의사가 권하는대로 따르기로 한 것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영향을 끼칠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지시대로 루프를 끼고 서너달 몸 상태를 관찰해보니 생리양도 줄었고, 통증도 줄었다. 혈색은 살아났고, 덩어리진 혈액이 쏟아질 때의 끔찍하게 느껴지던 촉감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생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살아있는 기분이 되었다. 나는 마리아에게 감사했다. 마리아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지도 못한 채 늘 우울한 학생으로 강의실 구석으로만 다녔을 것이었다. 마리아는 내가 가진 고민을 해결함으로써 문제 해결 후에 정돈된 삶을 어떻게 평화롭게 유지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내가 논문의 주제를 정할 때도 마리아는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학대를 받은 아동이 자라서 부모교육, 부모훈련을 받은 경우와 받지 않은 경우 어떤 결혼생활을 하나>에 대한 연구는 사실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다양한 사례연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당 자매님의 소개로 강의가 없는 날에는 청소년 상담센터에 상주하며 학대받은 십대 아동과 교류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사례연구 제안에 응할 시에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과거로 인해 결혼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불안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일찍 가정을 가졌을 때를 준비하는데 동의했다. 상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에 대한 환상 내지는 외로움에 대한 탈출로 동거를 시작하는 경우 그들은 몹시 불안정한 상태로 육아 전선에 뛰어든다. 센터에서 주는 경제적 지원과 정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정작 연구에 필요한 앙케트를 작성할 때 그들은 성실하지 못했다. 아니 성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육아만으로도 심신이 취약해져있으므로 집중해서 서류를 작성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럴 때는 마리아가 지원군이 되어서 그들 대신 펜이 되어주었다. 그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아 적는 식으로 어떻게든 사례를 채집했고 데이터화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학대를 받은 아동이 자라서 부모교육, 부모훈련을 받은 경우와 받지 않은 경우 어떤 결혼생활을 하나>가 학술지에 실리면서 모교에서 연락이 왔다. 모교에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리가 났으니 돌아오지 않겠는가고. 마리아는 나보다 더 기뻐했으나 정작 나는 망설여졌다.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리아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들 부부는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그 약속의 시간이 가까워져서 나에게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말한 뒤 내 눈을 바라보았다. 마리아를 잘 알고 있기에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며 그날은 저녁을 먹지 않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photo by lam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