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나는 때때로 남동생과 트러블이 생기면 엄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어제 잠깐 그런 마음이 들었다.
글을 써서 넘겨야 하는데 마음을 잡지 못하고 오전 내내 인터넷 쇼핑만 했다. 일회용 폴리스틸렌 수지 핀셋을 사고 멸균 슬라이스볼 탈지면을 사고 포비돈요오드 치료겔 욕창 화상 헤르페스 상처 치료 레피젤을 사고 테나 징크 크림 욕창 예방 연고를 사고 솔박 겔 드레싱(욕창 당뇨발 화상 감염 상처소독 드레싱)을 샀다.
수목장을 검색하여 경기추모공원과 카톡친구맺기를 했다. 이윽고 전화가 걸려왔다. 양평 무궁화공원묘원은 아쉽게도 개인목은 없고 2인, 가족장부터라며 개인장으로는 일산과 용인, 가평에 있는 수목장을 안내받았다(나는 나의 묘자리를 알아보는 심정이었다. 나에겐 아무도 없으니 삶의 마지막은 이렇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언제라도 찾아뵐 수 있나요?" "예, 그럼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지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니다." "어디에 사시지요? 마포라면 일산이 가깝겠네요. 제2자유로를 타면 1시간 정도 걸립니다." "300만 원은 옥향 20cm부터 시작하고 평생입니다. 400만 원은 옥향 22cm 입니다. 또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전화주세요. 저는 국가공인장례지도사니까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는 운전중이었으며 성실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남동생이 물병 때문에 정신없게 해서 읽고 있던 존 쿳시의 <서머타임>을 병실에 두고 왔다. 나는 얼마 전에 타계한 폴 오스터와 존 쿳시의 절판된 서간문을 헌책방에서 구입해 두었기에 서로 다른 그들이 편지를 통해 어떻게 친구가 되어 우정을 쌓았는지 <디어존, 디어 폴>을 펼쳐 탐색하기로 했다.
비 오는 오늘 내가 잘 한 일은 아이에게 변함없이 아침밥을 차려준 일과 연필 17자루를 깎은 일과 나와 아이를 위해 연필 4타스를 주문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