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욕창은 더디지만 아물고 있다. 어제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요기할 것을 만드느라 반나절이 훌쩍 가버렸다. 점심으로 준비한 뼈해장국을 마다하셔서 당황했다. 비오는 날이라 부엌은 어둡고 고즈넉했다. 나는 부엌에 서서 단호박을 쪘다. 토마토에 열십자로 칼집을 내서 뜨거운 물을 붓고 껍질을 벗겼다. 도마 위가 아니라 그냥 접시 위에 토마토를 놓고 칼로 잘게 잘랐다. 찐단호박 거친 껍질은 뽀삐에게 주고 부드러운 부분만 포크로 으깼다. 토마토와 단호박을 섞어 만든 이유식을 드리자 이번엔 드셨다.
저녁에는 호박과 양파를 듬뿍 넣은 김치볶음밥을 정명이와 드셨으나 절반쯤 남기셨다. 막 씻고 나와서 잠자리에 들 무렵 "아, 배고파." 한다. 저녁에 가지나물을 무쳤는데 그 가지나물 맛이 삼삼했다. 나는 들기름을 넣은 가지나물에 밥을 비벼 엄마에게 한그릇 드렸다. 남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명이가 "할머니께서 드시니까 저도 배고파요."했다. 나는 허리가 아팠지만 한창 크는 나이라 다시 밥 한공기를 퍼서 김봉지를 뜯어 김밥 열 개를 만들어 접시에 올려주었다. 아이는 김치에 꼬마 김밥 열 개를 냠냠 먹고 이를 닦고 수십 번도 넘게 본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다 잠이 들었다. 우리는 그 영화 대사를 외울지경이 되었는데도 정명이는 질리지도 않고 본다. 무언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영화 대사 '약하기 때문에 약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끼리 살아가야 하는거예요.'라고 주장하는 씬이 좋은걸까. 아니면 '형아는 나 안떠날꺼지?'와 같은 대사가 좋은걸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형아랑 동구랑 라면 먹으며 투닥거리는 것이 좋아서일까.
나는 안다. 정명이가 자라면 이 특별한 영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사람들끼리 돕고 어울리며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자신의 내부에 어느새 뿌리깊에 내려앉아 있으리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