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by 이은주

구둣방에서 운동화 뒤꿈치 수선을 맡기고 한 시간 후에 찾으러 갔다.
“바늘이 두 개나 부러졌어..”
“바늘이 두 개나요?”
“응, 내 팔자지 뭐.”
좁은 구두 수선집 문을 반쯤 열고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피우고 있던 담배를 마저 피웠다. 담배를 피우는 옆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가 인내했을 삶의 평행선, 그 평행선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머릿속으로 바느질을 멈추고 부러진 바늘을 새로 갈아야 했던 할아버지의 번거로움이 그대로 지나갔다. 만 원을 드리면서 말씀드렸다.
“잔돈은 됐어요. 따스한 차라도 사 드세요.”
말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알아줘서 기쁘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사이 손님이 오면 받고 그랬어.”
그가 한 시간 동안 내 운동화만 고친 것은 아니었다고 자부심을 가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요. 자, 이제 고쳐주셨으니 오래 신을게요.”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는 마르코폴로의 신간이 와 있었다.
<환상 공화국의 카퍼레이드>는 제목부터 아이러니하다. 흥미롭게 서너 장을 넘겨보는데 전화가 왔다. 한국일보 기자였고, 인터뷰를 원했다. 나는 기자가 기사 내용을 확정하고 그 틀 안에서 글을 쓰는 일을 봐왔다. 요양보호사로서의 권익과 처우개선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구 저편에서 티끌처럼 생긴 문제를 확대 해석하는 건 거부한다.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기사화하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문제점만 나열하는 것이 저널리즘은 아니다. 재가요양에서는 케어 대상이 병원에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비자발적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장기근속을 해도 혜택이 별로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헌신을 요구받는다. 직업적 존엄성과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최저임금에서 적절한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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