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요양보호사입니다

by 이은주

# 저는.. 문장에 익숙하기 때문에 전화로 일을 제안하면 서툴게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흠 화,목 오전근무 후에 3시간이면 좋겠다 싶지만, 갱년기 증상인지 요즘 제 몸의 증상이 허리, 등, 손목 통증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요. 물론 손자의 육아도 한몫하지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는 단순한 작업이 다 노동을 필요로 하거든요. 바우처 어르신 서비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노동의 강도를 양손마비인 어르신 가사노동을 끝마치고 바로 근무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것인지요

지난번 대화 중에 느낀건데요. 일을 제안하셨을 때 제가 손목과 허리가 안 좋아서 사양하자(15평 아파트를 걸레 4장을 사용하여 3시간 서비스 전체로 요구하시던 분) 요양보호사를 일분일초도 쉬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느껴지게끔 '3시간 다 일하지는 않잖아요.' 하시던데.. 그 말에도 상처가 남아요. 요양보호사의 일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복지사들조차 서비스를 할 때 그게 뭐 힘든가 라고 생각한다면?! 말속에 숨은 뜻을 읽고 이 일에 회의가 들었답니다.


## 선생님 제가 3시간 다 일하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을 때, 쉬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느껴지게끔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물론 서비스 제공이 힘든 것은 알고 있고, 내내 일을 시키는 어르신께 조금씩 쉬는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오해가 있으셨다면 죄송합니다.

화, 목 어르신 후에 활동하시는 게 어떤지 말한 건 지역도 같고 하니 한번 나가셨을 때 다 활동하시는 게 좋지 않으실까 해서 제가 제안한 거고, 힘드시다고 생각되시면 방문하시지 않는 날에 방문하셔도 됩니다. 일부러 그때 가라고 강요드린 건 아니에요.

이번에 부탁할 어르신은 눈이 잘 안 보이시고 관절염이 있으십니다. 주로 원하시는 서비스는 국이나 찌개 등의 반찬과 청소 등의 가사도움 서비스입니다. 혼자 사시는 게 아니고 아드님 2분과 같이 사시는데, 두 분 다 장애를 가지고 계셔서 어르신 혼자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생각해보시고 답변 부탁드립니다.


# 그렇군요. 그럼 일단 화, 목 1시 30분부터 3시간 서비스를 해보기로 하지요.

화, 목 어르신과 우정이 쌓일수록 해드리고 싶은 것이 많아져서 노동의 강도가 늘어나던 참이었어요.. 늘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납니다..


## 차이가 있으니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겠죠^^ 승낙 감사합니다. 바우처 선생님께 전달해 드릴게요.


양손마비인 뮤즈의 식사를 준비하고, 몸을 닦여드리고, 세탁을 돕고, 장을 보고, 병원에 동행하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하고 돌아오는 길 허리에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 할 수만 있다면 뮤즈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싶어서 쩔쩔매는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 가보지 못한 길을 동경하며 매번 경계를 뛰어넘으려다 피를 흘리고 쓰러졌던 세상살이가 겹쳐지면서 살짝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기억해야지. 양손마비인 뮤즈를 만난 첫날의 인상을.. 뮤즈가 해맑게 웃었더랬다. 11월 겨울 환풍을 안 한 실내에 씻지 않아서가 아니라 잇몸 염증이 있어서 나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를, 그녀의 양치를 도우면서 입안의 찌꺼기가 앞치마에라도 튈까 봐 물러섰던 기억을.. 이제는 그녀의 무엇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고, 씻어서 반짝반짝 해진 얼굴에 로션을 공들여 발라드리는 일을 통해 나의 하루가 온전해지는 느낌으로 우울의 밑단을 줄여버리자. 뮤즈가 오늘 청한 메뉴는 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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