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호의 덕분에
사당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중고서점에서 산 책을 들춰보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열차는 사당까지만 운행합니다." 여기까지는 흔히 듣는 말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뒤에 뭔가가 자꾸 붙었다. 안내 방송치곤 꽤 길었다. 사당역은 2,4호선 환승역이니 사람들이 많이 몰려 환승하기 힘들다, 그러니 몇 호선에서 환승하려면 이번 역에서 내리는 게 좋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지하철 이용객이라면 다 아는 사실. 음식에 소금을 치려는 내게, 옆에서 누군가 '소금은 짠맛이 나요'하고 일러주는 격이랄까. 잠시 뒤 사당역에 도착해 내리려는 찰나, 다시 흘러나온 안내방송이 나를 잠깐 붙들었다.
"옆에 아직 자고 있는 승객이나 외국인이 타고 있다면 깨워서 함께 내리시기 바랍니다. 아직 자고 있는 승객이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사람, 오지라퍼다.
안물안궁
오지라퍼. 옷자락 앞섶을 뜻하는 우리말 '오지랖'에 직업적인 전문가를 의미하는 영어'er'을 붙여 탄생한 말이다. -er에서 눈치챌 수 있듯, 오지라퍼는 단순히 남일에 관심 많고 참견 잘하는 성격을 이르지 않는다. 그쪽 방면으로 탁월한 전문가를 지칭한다. 흔히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편이라, 오지라퍼 역시 긍정보다는 부정의 뉘앙스가 짙다.
세상에 인구수만큼의 일상이 존재하듯 -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 사실이 나는 늘 경이롭다 - 오지라퍼 역시 각자의 일상만큼이나 다채로운 결을 띠고,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한다. 집에 컴퓨터 고치러 온 수리기사 분과 라면을 끓여먹고, 내친김에 같이 포차에서 술 한잔 걸치며 인생 상담까지 해준 지인 A.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라디오 방송 스케줄과 콘서트 일정을 수시로 업데이트해주는 지인 B ('좋아한다'는 감정이 표현과 비례한다면, 나는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자정 무렵,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튀김 반죽에 식용유를 넣어봐!" 하고 TV에서 본 레시피를 알려주는 지인 C(꿈에서 만들어보겠습니다). 어디를 갈라치면 행선지의 갈만한 식당과 괜찮은 카페까지 죄다 훑어주는 지인 D(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계획이 힘들어 여행 자체를 포기해버리죠). 내가 어른이 되었어도 무시로 전화를 걸어 "까스불 조심해라." 하던 외할머니(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네요). 이들은 모두 오지라퍼다.
한때 나는 오지라퍼를 '참견쟁이'로 이해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은 일곱 글자로 압축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안물안궁'이란 바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아니겠는가. 빠듯한 내 하루를 챙기기에도 바쁜 마당에, 이런 것들을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담. 그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의 여유를 시샘했다. 그들의 오지랖은 기꺼이 다른 이를 품을 정도로 넉넉했지만, 내 몫의 오지랖은 내 한 몸 싸매기에도 길이가 짧았다.
내 인생에 등장하는 대표적 오지라퍼는 홍콩 친구다. 지난 4년간 엽서 한 장으로 날 끈덕지게 괴롭혔다(?). 4년 전 나는 새해를 하루 앞두고 충동적으로 대만에 갔고, 빈방이 없어 한 게스트하우스의 거실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같은 날 투숙한 홍콩 사람이 한국어로 새해인사를 알려달라기에 알려줬다. 카드를 보내고 싶다기에 주소도 알려줬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 친구의 엽서를 받았다. 그런데 그 뒤로 그 친구는 해마다 내게 엽서를 보내왔다. 심지어는 브라질 리우 올림픽 자원봉사를 가서도 엽서를 보내왔다. 엽서의 마지막 줄엔 항상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었다. 그 친구와 얼굴 맞대고 이야기한 시간은 10분 남짓. 그런데도 이렇게나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그가 참 오지라퍼 다웠다. 답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 답장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슬그머니 바뀌었고, 나중에는 짜증이 일었다. 답장 없는 엽서에도 줄곧 엽서를 보내는 그 마음에, 바쁘다는 핑계로 응답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 대한 짜증이다. 집 근처에도, 회사 근처에도 우체국이 있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바쁘고 어려워서 4년 동안 한 번도 우체국에 가지 못했을까.
올해도 그 친구가 어김없이 내가 가르쳐준 한국어로 새해 인사를 보내왔다. 그 친구에게 보내주겠다고 한국의 문화재가 예쁘게 그려진 엽서를 사둔 게 벌써 2년 전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느 홍차 브랜드에서 나눠준 엽서의 뒷면에,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짧은 인사를 쓰고는 우산과 엽서를 챙겨 집을 나섰다. 눈이 펑펑 오던 1월의 어느 날 아침. 집에서 우체국까지 걸어서 5분, 국제우편 발송료는 470원, 보내는데 걸린 시간은 30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서정주가 고백했던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하고. 내 주변의 오지라퍼에 대해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고마우면서도 불편하고, 나는 그만큼 내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샘도 나는 복잡한 마음을 헤치고 고백하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오지라퍼다'.
이틀 전만 해도 그렇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뭔 정신을 놓았는지 걷다가 발이 꼬여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고꾸라졌다. 지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두 마디씩 걸만큼 크게 넘어졌다. 온몸에 힘이 없어 그대로 大자로 엎어져 있었는데, 어떤 남자분이 나를 흔들며 "119 부를까요?"라고 진지하게 묻는 바람에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겨우 일어났다. 눈에 들어오는 게 마침 약국이라 절뚝거리며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나를 소파에 앉히고는 소독솜과 약을 꺼내 손바닥의 상처를 닦고 무슨 가루를 뿌리고 또 뭔가를 발랐다. "내가 대학 때 말이야, 친구들 응급치료 다 해주고 그랬어." 내친김에 다리도 걷어보라고 했지만,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분홍 소시지 빛깔의 내복을 입고 있다는 게 괜히 민망해 손사래를 쳤다. 아줌마는 내복 입어도 괜찮다고 몇 번이나 내 다리를 걷어보라고 했지만, 무릎에 흐르는 피를 느끼면서도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까만 내복만 입었어도.
나를 옆에 앉히고 약도 발라주고 마법 가루도 뿌려주고 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아저씨가 한 소리 했다. "아가씨, 운 좋은 줄 알아요. 나 혼자 있었으면 아가씨 치료 안 해줬어. 약국에서 그렇게 해주는 거 불법이거든." 우물쭈물하는 나를 사이에 두고 아주머니가 말을 맞받아쳤다. "아, 무슨 소리야. 내 딸이야. 내 딸. 내 딸 치료도 못해줘?" 분홍 소시지 내복을 입고, 손바닥과 무릎에 피를 흘리며 잠시간 그렇게 약국 아주머니의 딸이 된 나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소독약이 살갗이 닿는 찌르르한 통증을 핑계 삼아 좀 울었다. 어른은 슬퍼도 대놓고 울질 못하니 이렇게 비겁하게 운다. 절뚝거리며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친구가 연고와 소독약이 든 까만 봉지를 들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레로로쉐 초콜릿도 함께.
나는 혼자서 척척 하는 사람이라고, 혼자서 다 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착각하며 살아갔던 때도 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허술하고 빈틈이 많아서, 혼자서는 도저히 뭘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인지의 문제이지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너무 큰 착각에 빠져서 도움을 알아차리는 눈이 없었을 뿐. 남들이 내게 호의를 베풀 이유는 전혀 없다. 말 그대로 오지랖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직접 만든 딸기잼 한 병을 들고 서울에 올라와 건네주는 친구도 있고, 책 쓰는데 힘내라고 새벽 배송으로 아이스크림을 보내주는 언니도 있고, 장아찌가 맛있게 익었다며 맛보라며 하얀 봉지를 쓱 내미는 아주머니도 있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긴긴 통화를 해주는 이도 있다. 5천 원짜리 젤라토 컵 하나를 사러 가면, 열 가지 맛을 다 보게 해 주면서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재료가 다 들어갔는지를 일일이 설명해주는 사장님도 있다. 얼마 전엔 어떤 농부님께 딸기가 너무 맛있다고 얘기했더니, 실컷 먹으라며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아.
오지라퍼는 특별히 오지랖이 길고 넉넉한 자들이라는 혼자만의 오해도 살그머니 사라졌다. 오지라퍼의 자격은 그저 '5분, 470원, 30초'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였다. 마음의 자세가 바른 그들이 운 좋게 내 곁에 있었던 덕분에, 수시로 무너지려는 내 마음도 바로 섰다. 무너져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갑자기 회사로 날아든 엽서 한 장 덕분에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잠시 웃을 수 있었고, 식빵에 잼을 슥슥 바르는 기쁜 아침을 맞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끝까지 붙들 수 있었고, 삶을 대하는 내 자세를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국에는 어느 눈 오는 아침, 몸을 일으켜 우체국으로 걸어가 다른 나라에 엽서를 보내는 내가 된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지라퍼 덕분에,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씩 말랑말랑해진다. 그러니까 오지라퍼의 정의를 다시 하자면 '세상의 날 선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사람'이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자면 지구가 둥글어진 이유도 어쩌면 그들 덕분일 수도 있다. 그들이 있는 한 지구는 계속 둥글것이고, 지구가 둥그니까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도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지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동요 <앞으로>
내 인생의 모든 오지라퍼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