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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Feb 10. 2020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책방 앞에서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존 버거, <A가 X에게>


하루가 닫히는 시간, 존 버거의 문장으로 글을 엽니다. 오늘 지인들과 인사동을 거닐다가 새로운 책방을 발견했어요.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된 책방이라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정작 우리가 들여다본 건 안이 아니라 바깥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문장들이 책방을 빙 둘러싼 유리벽을 장식하고 있었어요. 가만히 따라 읽던 한 사람이 "이 문장 너무 좋아"하고 사진을 찍고, 또 가만히 따라 읽다가 "이것도 너무 좋아."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부분 내가 읽어본 책, 혹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꽂아둔 책들이 품은 문장들이었어요. 별생각 없이 지나친 문장이 새롭게 다가와서, 나도 존 버거의 문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A가 X에게>는 사놓은지는 족히 오 년도 넘었는데, 채 몇 장도 들춰보지 않던 책 중 하나였거든요. 저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있었다니. 좀 더 빨리 만났다면 결점을 좀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을지 잠깐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한 문장

오늘 우리가 책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멈추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어떤 때에는 바로 곁을 지나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가수 요조가 <아무튼 떡볶이>라는 책에서 꽃나무 향기에 대해 말한 것처럼, 아침 여덟 시의 출근길 전철 안 같은 문장인데 내 마음에 그토록 좋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죠. 어떤 문장이 내 마음을 쿡 찌르고 왁 하고 울리는 순간은, 그 때의 내 마음 하필 만난 그 문장이 빚어내는 절묘한 찰나.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만난 한 줄, 한마디에 눈가가 찌르르해진다면 그걸로 너무 충분해요. 결코 자주 오는 순간은 아니거든요.


늘 수혜자의 입장에서 문장을 접하다가, 나도 글이란 걸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저마다의 '멈춤 지점'이 달라서 정말로 신기한 거예요. 나는 별생각 없이 쓴 문장인데 "그 부분이 진짜 좋았어"하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죠). 나는 10만큼 울면서 썼는데, 읽으면서 100만큼 울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90만큼의 고마움과 뭉클함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정들이 나를 감싸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10이었는데, 사람들이 90을 만들어줘서 100인 내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어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약속 시간에 좀 늦었어요. 친구가 기다리는 동안 내 글을 읽고 있겠다고 해서 쑥스럽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길 가다가, 서점에서, 지하철에서 내 책을 읽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고.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 친구가 "난 네가 쓴 튀김에 대한 글(https://brunch.co.kr/@ringringstar/199)이 너무 좋았어"하고 이야기하면서, 눈가가 발개지는 거예요.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막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라는 말을 들으니까, 그런 말을 나에게 해줘서 고맙고 또 내가 누군가의 한 문장이 될 수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일렁일렁하고. 글 내용은 너무 단순하거든요. 끓는 튀김 솥에 물 묻은 튀김망 덥석 집어넣었다가 난리 법석 났지만, 지 말고 계속해보자. 이게 다예요. 그런데 이걸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울컥했다, 나도 힘내겠다, 위로가 되었다'라는 말을 나에게 돌려주어서,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 싶더라고요. 10을 줬는데 100으로 돌려주는 사람들. 한 문장을 줬는데 온 마음을 다 주는 그런 사람들. 그래서 내가 계속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들.



오늘의 한 문장

고백하나 할까요? 이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계속 쓰고 있었으면서 무슨 소리냐, 라는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나는 이제야 겨우 계속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돌아보면 스무 살도 전부터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책으로 얻게 될 것들을 나도 모르게 먼저 그려봤던 것 같아요. 책을 내면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겠지. 글을 써서, 그러니까 싫어하는 회사에도 안 가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겠지. 그런데 곧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게 될 테고, 사람들이 "작가님"하고 부를 때마다 이제 손사래 치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물론 소중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한 문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결심을 며칠 전에야 했어요. 라일락 나무가 죽을 때까지 라일락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 쓰는 사람이고 싶다,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요. 10을 쓸 수 있으면 10을 쓰고, 20을 쓸 수 있으면 20을 쓰고. 그 나머지를 채우는 일은 내 몫이 아닌 거니까.


오늘 지인들과 헤어지고 혼자서 중고서점에 갔거든요. 늘 살펴보는 게 요리코너인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나를 평소엔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는 코너로 인도해서 손에 잡히는 책을 척 펼쳐보니 "그놈의 고래 때문에 죽겠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혹시 떠오르는 사람 있나요? <모비 딕>의 저자, 허먼 멜빌입니다. 그가 친구에게 소설 쓰기 힘들다고 징징댄 내용인데, 이 모습이 저랑 너무 비슷해서 웃긴 거예요. 마침 어제 "아, 요즘 회사 다니느라 진짜 체력도 바닥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글도 써야 되고... 중얼중얼 중얼" 투덜거렸거든요. 중고서점에서 건진 세계적인 대작가의 투덜거림 덕분에, 아마 당분간 나의 투덜거림이 좀 줄어들 것 같습니다.


나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결점이 많은 문장들을 쓰겠죠. 그런데 누군가가 내 문장을 가만히 끌어안는 찰나가 있다면, 그 찰나 덕분에 마음이 찌르르해진다면 나는 그걸로 정말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점이 많아서 기쁘다는 생각도 어쩌면 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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