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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Oct 04. 2024

혼자 먹는 밥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보내는 양상은 다양하다. 동료와 친목을 다지는 경우도 있고, 운동이나 취미 생활로, 팀 단합의 시간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지내온 팀들은 항상 팀끼리 점심을 먹었다. 팀 단합을 위해서나 서로를 챙기기 위함도 있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당연한 일이던 적도 있다. 특히 저연차 때는 리더의 성향이 나의 점심 문화에 꽤 영향을 준 것 같다. 팀의 막내였을 땐 메뉴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K-직장생활을 잘하려면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윗사람들이 먹고 싶을 만한 음식을 골라야 하니 말이다. 이때는 팀장님이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팀원들과 상의해 가며 약속을 잡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팀이 같이 점심을 먹는 게 좋았던 때도 있다. 팀 인원이 4명 이하던 적이 있는데, 그 회사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문화였다. 북적이는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우리는 누군가 혼자 밥을 먹지 않도록 암묵적으로 챙기며 같이 밥을 먹었다.

요즘 나는 혼자 먹는 밥을 선호한다. 그리고 팀원들도 편하게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경험상 나의 성향이 알게 모르게 팀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팀끼리 점심을 먹어왔던 터라 원래부터 혼밥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민망함에 밥 먹는 속도는 빨라지고, 사람이 많은 음식점은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혼밥의 장점이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색함과 민망함을 극복하고 있다.




 사실 혼밥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말을 조심하기 위해서였다. 팀원들과 밥을 먹다 보면, 나도 사람인지라 같은 회사 사정이나 다른 팀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꺼내게 되곤 했다. 말하고 나면 소모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회사에 대한 소문이나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포함될 때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팀원에게 지식의 불균형이나 소외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말로 꺼내놓고 그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워 담지 못해 후회한 경우들도 많았다. 계속 팀원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긴장이 풀어지기도 하고, 대화를 이어가려 자꾸 불필요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신경쓰느니 차라리 혼밥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왕 혼밥을 할 거라면 그 시간을 정말 잘 활용하고 싶었다. <처음 리더가 된 당신에게>라는 책에서는 리더가 채워야 하는 곳간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전문성, 비전, 건강, 스타일, 직업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혼밥을 하며 이 다섯 가지 곳간 중 비전과 건강 두 가지를 채우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비전을 채우기 위해 점심시간을 독서나 글 쓰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로 투자나 자기 계발 관련 책을 읽으려 노력하는데, 이는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먼 미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우리 시대에 정년퇴임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가 나의 쓰임을 판단하여 퇴직을 통보하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은퇴 시기를 결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 책의 저자는 투자를 시작한 1차 목표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은퇴 후 필요한 적정 금액을 기준으로 투자방법을 설계하도록 설명한다. 예를 들어 예상 은퇴 시기와 기대수명을 감안해 노후에 필요한 금액을 산출하고, 아파트 한 채당 목표 수익과 필요 금액을 달성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채수를 계산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은퇴 시기를 정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세워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투자 관련 책은 단순히 방법론적인 제시만 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소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후로 이른 은퇴를 실제로 실행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지혜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책들에서 얻은 지혜는 사람들과 소통하는데도 아주 유익하게 활용된다. 지금 나의 기록에도 큰 역할을 하듯이 말이다.

회사 일을 잘하는 것과 내 노후를 얼마나 잘 대비하느냐는 별개의 일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자원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나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은 팀원들에게 비치고 싶은 나의 비전이다.

그리고 건강을 채우기 위해 메뉴 선정은 혼자 먹기 편한 기준에서 건강한 식사를 기준으로 바꾸고 있다. 처음에는 식당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해 도시락을 사와서 먹거나, 빵으로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출산 후 몸이 많이 안 좋아진 상태인지라 먹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일상에 영향을 주곤 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건강하고 가벼운 메뉴를 고르려 노력한다. 주로 포케나 타코볼, 샐러드 가게를 찾는데, 이런 메뉴들이 혼밥하는 이들이 많아 심리적 진입장벽도 낮은 편이다.


  혼자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을 중심으로 생각을 전환하니, 혼밥은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워킹맘이다 보니 집에서는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주말에는 특히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더더욱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가 어렵다. 이렇게 평일 점심시간을 쪼개서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다 보면 하루를 아주 잘 운용한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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