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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Sep 28. 2024

과제의 분리

 엄마는 아이들의 대변인이다. 말과 표현이 서툰 아이들이 불편한 일을 겪는다면, 엄마는 그 상황을 중재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사과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가장 크게 변한 점이 있다면, 불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소심하기도 하고, 상대의 반응에 민감한 편이었다. 그때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무척 중요했던 것 같다. 그냥 손해 보고 말지, 나에 대한 상대의 평가와 시선을 걱정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어차피 안 볼 사람이라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들은 계속 마주칠 테니 불편해지면 곤란하다는 핑계로 그렇게 흘려보냈다. 심지어 직장에서 다소 억울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도, 그것이 연말 평가에 고스란히 적혀있을 때도 내 입장을 대변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의 일은 달랐다. 엄마가 되어 보니, 아이들이 상처 입거나 실망하는 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두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실내 놀이시설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여느 때처럼 차례를 지키며 미끄럼틀을 잘 타고 있는데, 또래 남자아이가 다가오더니 당당히 새치기를 하지 뭔가. 아이들은 나에게 배운 대로 안된다고, 내 차례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화를 내며 마치 위협을 하듯 손에 든 종이를 아이들 얼굴 쪽으로 마구 휘둘렀다. 처음 겪는 일에 나 역시도 무척 당황했고, 우선 아이들이 종이에 베일까 봐 얼른 피하게 했다. 그러고는 눈으로 남자아이의 보호자를 찾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순간엔 아이들의 속상함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바라본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끄럼틀을 타지 못한 속상함과 엄마의 태도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쌍둥이인 아이들은 집에서도 놀잇감을 뺏고 뺏기는 상황이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차례를 지키며 놀도록 교육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꽤나 엄격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잘못한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잘못 없는 본인들만 미끄럼틀을 못 타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작은 일이라도 아이들이 불편한 일을 겪으면 그 상황을 대변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막상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고 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대 아이의 보호자 역시 먼저 사과하거나 아이를 제지해 주었지, 지레 걱정하던 불편한 태도나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회사에서의 나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나에 대한 생각과 평가를 걱정하며 할 말을 많이 아껴왔다. 생각해 보니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일을 거절해 본 적이 없었다. 왜 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거나, 내 영역에서 벗어난다고 느낀 적도 많았지만, 그 말을 꺼내면 나를 좋지 않게 평가할 것만 같았다. 역시나 내가 좀 힘들고 말지. 생각하며 묵묵히 일했다.

하지만 팀장이 되고 보니, 이건 그냥 나만 힘들고 말 일이 아니었다. 팀을 대변하지 못하는 팀장은 팀원들에게 불필요한 일을 떠안게 할 것이고, 이는 곧 불신으로 연결되기 쉽다.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소개하며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인정욕구는 사람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는 것을 동기 삼아 생존한다는 기본 욕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들러는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그리고 인정욕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한 뒤 나의 과제에만 집중하고 타인의 과제는 개입하지도 떠안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팀장이 되고 나서 납득하기 어려운 업무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다. 우리 팀이 담당하는 프러덕트도 아니었고, 이미 유사한 서비스를 다른 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진행 과정에서 의견 차이로 차질이 생겼고, 돌고 돌아 우리 팀으로 요청이 온 듯했다. 그럼에도 상위조직장을 통해 전달된 요청이기에 처음에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업무를 파악하면 할수록, 팀원에게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기대 결과도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적어도 왜 본인에게 이 일이 주어졌는지 납득시켜아 하는데,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일을 떠넘기면 어떻게든 진행은 되겠지만, 나는 더 큰 신뢰를 잃을 것이다.

이 상황을 과제의 분리에 대입해 봤다. 내가 걱정하는 타인의 과제는 무엇일까. 나는 사실 이 일을 거절함으로써 상위직책자가 나를 안 좋게 평가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평가도 결국 타인의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상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과감히 그것을 버리고, 나의 과제인 나의 일과 나의 팀원들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책에서 소개한 대로 나는 나의 일의 경계선을 정하고, 범위를 벗어난 일은 경계선 밖으로 내밀기로 결심했다. 막상 거절을 하고 나니 이 또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거절 의사를 표하기 전까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떻게 말할지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러봤는지 모른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 누구도 나를 안 좋게 보지도, 나쁜 평가를 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절 이유를 잘 들어주고, 흔쾌히 수용해 주었다. 일어난 일이라고는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거절 덕분에 나는 과제의 분리를 실천하며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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