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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Oct 07. 2024

한 발 물러서기

 육아에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이 있다. 정서적, 신체적 발달이 중요한 영아기에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신뢰 형성과 신체적 건강에 초점을 맞춘 육아가 필요하다. 반면 자율성과 독립성이 발달하는 유아기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립심을 갖도록 독려하는 육아 방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양육자가 모든 걸 대신 해결해주면 오히려 유아기 발달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엄마는 아이들의 대변인이라 표현했지만, 그것 또한 아이들이 독립심을 갖기 전까지만 필요한 역할인 것 같다.

쌍둥이 중 첫째 아이는 유독 원하거나 불편한 것을 말하기를 어려워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고, 부단히 대변인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아이는 나를 영웅처럼 바라보았고, 그때는 필요한 일을 해줬다는 생각에 마냥 뿌듯했다.

만 3세가 훌쩍 넘은 시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 아들과 둘째 아이는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하며 금방 어울려 놀았다. 하지만 첫째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자꾸 와서 안아달라고 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옷자락을 잡곤 했다. 이후 아이들은 방에서 병원놀이를 시작했고 나는 거실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방이 조용한 것을 깨달았다. 걱정이 되어 들여다봤더니 첫째 아이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운 걸 잊은 채 둘째 아이와 친구 아들은 잠깐 다른 놀이에 빠져버린 것이다. 첫째는 그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불속에 꼼짝 않고 있었고, 내가 서둘러 이불을 벗기고 나서 지금 불편한 지 물어보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의도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첫째 아이가 어떤 표현이든 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늘 엄마가 상황을 해결해주다 보니 아이는 직접 마음을 말하는 연습을 한 적이 없던 것이다.

나는 그날을 통해 이제는 내가 한 발 물러서야 하는 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표현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팀 리딩에도 적절한 시기와 방법이 있는 듯하다. 팀장이 되고 초반은 신뢰를 쌓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닌 시기였다. 우선 나를 증명하는 것이 팀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겼고, 특히 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이것은 초기 우리 팀의 필요성을 분명히 하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이후 팀장이 바쁘게 일할 수록 팀원들의 노고가 가려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맘 때 다른 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일이 많은 나를 걱정하면서도 팀원의 일을 내가 다 처리한다는 말이 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실이 아니기에 가볍게 대응하고 돌아왔지만, 왜 그런 말이 돌았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봐야 했다.

사실 스스로도 일이 많다고 느껴지던 때였다. 팀원들이 담당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관리했고, 회의마다 함께 참여해 주요 커뮤니케이션을 도맡았다. 내가 실무를 처리하던 것은 아니지만,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니 외부에서 봤을 때는 모든 일을 내가 하는 것처럼 오해할 여지가 충분했을 것이다. 마치 육아처럼 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다 때가 있던 것이다.

앞서 나의 비전에도 기재했듯이, 나는 나를 위해 일한다. 팀장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팀 리딩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경험은 나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가 잘 해내야 하는 것은 프로젝트 자체가 아니라 팀을 잘 이끄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다 보니 그 사실을 잊은 것이다. 내가 개입하여 프로젝트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수록, 팀원이 스스로를 두각시킬 기회는 사라질 수도 있다. 이제 나는 프로젝트에서도 한 발 물러설 때가 된 것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내가 프로젝트에 개입하는 일은 크게 줄었다. 문제 상황이 아닌 이상 팀원들이 담당자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고, 회의에서도 가장 구석에 앉아 듣는 것을 더 많이 한다. 역시나 일은 너무 잘 굴러가고 있고, 소문 역시 자연스럽게 사그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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