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책을 떠나 직장인은 고달프다. 어떤 업종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감정 소모가 뒤따른다. 내 것도 아닌 일로 서로 기싸움을 해야 하고, 각자의 논리와 이유가 다 있지만 결국 누군가는 의견을 굽혀야 일이 진행된다. 기획 직군 특성상 여러 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당연하거나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직접 말하기 어렵거나 곤란한 일을 떠넘기듯 조율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사람인지라 기분이 언짢아질 때도 있다.
팀장의 일 또한 이론대로만 흘러가면 어디 그게 현실이겠는가. 전쟁터에 나가는 마냥 팀원의 의견을 가지고 다른 팀과 설전을 벌여야 한다.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만을 떠안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티 나지 않도록 잘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래도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그동안에 해온 노력은 다 없던 일이 된다. 이럴 때는 누가 알아준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그야말로 전의가 상실되는 순간들이다.
팀장이 되면 대단한 책임감이 생겨날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막상 팀장이 되어보니, 그저 나의 일이 실무에서 팀 리딩으로 변경된 것뿐이지 팀원이던 때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팀원들을 대변하거나 프로젝트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더 자주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책임감을 가져서라기보다, 일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력을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과정에서 겪는 크고 작은 감정 소모들도 빨리 털고 일어나야 또다시 전쟁터에 나설 수 있다.
<회복탄력성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회복탄력성 지수가 높은 아이로 키우는 방법에 대해 다룬 책인데, 오히려 내게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로 감사 일기를 작성하라고 한다. 무엇인가에 감사할 때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면역 시스템도 활성화되어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은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사고하도록 도움으로써 회복탄력성을 높여준다고 한다. 나도 마음이 힘들 때 책에 나온 대로 감사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오랜만에 들춰 본 그 일기에는 온통 아이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회복시켜 주는 존재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품고 집에 돌아올 때면,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달려와 나를 꼭 안아준다. 마치 나의 기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건 늘 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내가 훨씬 더 많은 위로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딸은 연애하는 기분으로 키운다고 하던데, 그건 정말 사실이다. 특히나 애정 표현이 많을 시기라 하루에 사랑한다는 말을 몇십 번은 주고받는 것 같다. 자려고 눕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아이들을 쓰다듬듯 아이들도 내 볼을 만지며 사랑을 표현해 준다. 이렇게 사랑이 쏟아지는데 우울할 틈이 있겠는가. 어느새 부정적인 머릿속은 비 온 뒤 하늘처럼 맑아진다.
오늘도 에너지를 가득 충전받고 출근을 한다. 고달픈 직장인에게 위로받을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지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