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많이 — 그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빨리 해.”
“열심히 해.”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해.”
이 말들이 틀린 건 아니다.
부지런함, 성실함, 더 잘하려는 마음은 모두 좋은 덕목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이 말들이 삶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를 재는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렇게는 말해주지 않는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먼저 알아.”
“어디로 가고 싶은지부터 정해.
방향 없이 속도만 높이면 어떻게 될까. 주변을 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바쁜데,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성과는 내는데, 어디로 가는지 설명을 못 하겠어요.”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왜 달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효율을 높이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방향이 사라진 것이다.
엔진은 힘차게 돌아가는데, 핸들은 없는 상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다.
한 지인이 있다. 한 조직에서 15년을 버틴 중간 관리자였다.
매년 최고 등급을 받았고, 회의 때마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어느 날 퇴근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나 요즘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바쁜 건 맞는데, 뭘 위해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이 사람이 게으른 것도,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왜 하는가’를 묻지 않은 채, ‘어떻게 더 잘할까’에만 집중해온 결과였다.
효율은 훌륭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는 방향이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목적지 없이 빠른 차를 몰면, 기름만 탄다.
아무리 속도를 올려도, 가고 싶은 곳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효율은 방향이 있을 때 우리를 도와준다.
방향이 없으면, 효율이 높아질수록 더 빠르게 엉뚱한 곳으로 가게 만든다.
효율만 바라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멈추게 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거창한 인생 철학이 아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결국 삶의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준이 나에게 없으면 어떻게 될까.
환경이 시키는 대로 흘러가게 된다.
남들이 좋다 하면 따라가고, 유행이 바뀌면 또 따라 바뀐다.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그 기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당신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기준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자.
아침에 알람이 울려서 눈을 떴다.
카톡 알림이 와서 확인했다.
SNS를 열었더니 누군가의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뉴스 앱이 불안한 제목을 던졌다.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흐름 속에서, ‘내가 먼저’ 선택한 행동은 몇 개나 될까.
우리의 하루는 대부분, 자극이 오면 반응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자극을 만든 건 나 자신이 아니다.
알람을 설정한 회사, 알고리즘을 짠 개발자, 내 반응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다.
이것이 관리되는 삶이다.
내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나를 운영하는 상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섬뜩한 이야기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묻는 첫 번째 질문이 거기서 시작된다.
RISA™ | 구조가 없는 삶은 환경의 자극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내 하루를 실제로 설계하는 건 알람이고, SNS이고, 남의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