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초능력

침입적인 단편

by 승현

1.
자네는 초능력의 존재를 믿나?
난 믿어. 왜냐하면 실제로 초능력은 존재하거든.
손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거나,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런 능력.
자네가 영화 같은 데서 실컷 보았을 그런 진부한 능력들.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해.

내가 어릴 때에 사람들이 초능력을 쓰는 것을 보는 건 당연한 풍경이었어. 모두가 적재적소에 맞게 생활했지. 시장의 상인들은 칼을 쓰지 않고 손짓만으로도 깔끔하게 생선이나 고기를 손질해 주었어.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은 모두가 괴력의 능력자나 비행 능력자였고. 고층 아파트 이사 날에, 직원들이 냉장고나 책장 따위를 들고 십오층까지 날아오르는 걸 보는 건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었어. 길거리에 간간이 보이던 수레에선 물건을 식지 않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게 할 수 있었지. 난 그 아이스크림을 참 좋아했어. 요즘 마트 냉장고에서 파는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맛이 났거든. 뭐, 추억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렇듯, 초능력은 일상이었어. 세상 누구나 하나의 능력은 반드시 가지고 있었지. 간간이 능력자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요즘도 그렇지 않은가. 어느 세상에도 사건이나 범죄는 따라오기 마련이야.

자네, 이제 슬슬 의문이 생길 것이지. 그런 초능력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냐고. 내가 노망이 들었나 싶겠지. 지금부터 그걸 설명해 주겠네.

초능력은 태어나자마자 발현되는 게 아니야. 어릴 땐 지금의 사람들처럼 무능력하게 보내다가, 늦어도 성인이 되기 전엔 자신의 능력이 뭔지 알게 된다네. 그리고 결국 누구 하나 남김없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지. 이게 세상의 섭리였어.

아마 스무 살의 여름이었을걸, 내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 날이. 그래, 나는 내 능력을 "깨달"았지.
보통은 발바닥이 간지럽거나 특별히 손끝이 차가워지는 현상 같은 걸로 본인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돼.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 공중에 뜨게 되고 손에서 냉기가 나오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아무런 전조증상도 없이 한순간에 나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어.
이렇게 말하면 듣는 자네도 상당히 궁금하겠지, 그럼 군말 않고 바로 말해주겠네.

내 능력은 "사람들이 자신의 초능력을 알지 못하게 하는 초능력"이라네.

이해가 안 되나? 계속 들어봐. 그날, 내 능력을 깨달은 날. 일순간 난 깊은 백일몽에 빠진 것처럼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왔어. 하나하나 설명할 순 없지만 결론은 하나야. 내가 살아있는 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리는 것. 그게 내 초능력의 정체야.
내가 손가락을 튕긴다거나 정신을 집중할 필요도 없었어. 나 자신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세상은 스위치가 켜지듯이 갑작스럽게 변했어.
시장의 상인들은 칼을 쓰고 있었고, 짐을 나르는 자들은 크레인이나 트럭을 사용했지. 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살아오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그들이 쓰던 능력에 대해 물어보았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느니, 헛소리 좀 작작하라느니 하는 것들 뿐이었지. 알겠나? 그 순간 이후로 세상에서 초능력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이해하는 건 나 혼자뿐이게 되었다는 거야. 이게 바로 자네 역시 초능력 이야기를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궁금하지 않나? 자네는 원래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고? 그런가? 그럼 뭐, 됐네. 곧 알게 될 테니.

나도 참 오래 살았군. 능력의 영향 때문인지, 그냥 타고난 건지.
지난주가 벌써 백열세 번째 생일이었어. 놀랍지 않나? 지금 내 비록 호흡기를 달고 침상에 누워있는 신세지만 젊을 땐 얼마나 혈기 왕성했는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 진심이야. 정말이라네.

느껴져, 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그냥 늙은이의 넋두리가 아니라네. 머리 깊은 곳에서 느껴져. 그 여름에 느꼈던 그 백일몽과 같은 그런 목소리가, 며칠 후에 날 데리러 온다고 말하는 것 같이 울려와. 그래서 자네에게 이 얘길 해주는 걸세. 내 유일한 혈육인 자네에게, 이 세상의 비밀을 미리 알려주는 거지.

걱정되지 않나? 나는 무척이나 걱정되는군. 내가... 내가 죽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어버릴까? 갑자기 스위치가 켜져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옛날처럼 자연스럽게 초능력을 쓰던 시절로 돌아갈까?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 수십억의 지구인들이 혼란을 초래해 세상에 재앙이 일어날까? 후자가 아니면 좋을 텐데 말이야.

내 비록 젊을 때 잠깐뿐이었지만 내가 본 초능력의 모든 것을 기억해내 공책에 정리해 두었네. 내 재산과 함께 그걸 자네에게 물려주지. 혹시 세상에 혼란이 닥쳐와도 준비 단단히 하라고 주는 것이니 사양할 것 없네. 설마하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나도, 그냥 늙은이의 헛소리였군 하고 잊어버리게. 오히려 그편이 훨씬 평화로울지 모르겠구먼.

오랜만에 말을 많이 했더니 피곤하군. 이제 혼자 있게 해주겠나? 눈을 좀 붙여야겠어. 걱정 말게, 당장 오늘 밤 죽지는 않아. 왠지 그런 기분이 드는걸.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고. 또 연락하마.

2.
그 후로 할아버지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대신 나흘 후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오늘 밤을 버티기 힘드실 거 같다는 전화가 왔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방에서 찾은 공책에는 이미 말씀하셨듯이, 이십 대까지 목격 한 초능력자에 대한 것들이 나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언젠가 능력자들이 돌아와 사건사고가 생길 걸 염려하셨는지 갖가지 대응법과 능력의 유용한 사용법 같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꼼꼼한 할아버지의 성격이 고스란히 남겨져있는 기록이었다.

며칠 전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바로 직전, 나는 갑작스러운 피곤에 책상에 앉은 채로 꾸벅 졸았던 것이다. 그때에 어떤 꿈을 꾸었는데, 마치 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웅장하고 깊은 울림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단 한 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내 초능력은 사람들이 자신의 초능력을 알지도 사용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할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이런 꿈을 꾼 것일까? 하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 직후 전화가 와서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기 때문이다.

그 후로 할아버지의 염려대로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일도 없었다. 초능력자들이 재각성하는 일도 없었고 세상은 예전과 변함없이 전기와 도구로 움직여지고 있다.

설마 내가 할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은 것일까? 그래서 세상은 아무 변화도, 초능력자의 등장도 없이 그대로인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게 할아버지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었을까?

나는 이제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마 내가 죽고 나면 세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나는 그걸 목격할 수 없다.
그냥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간간이 할아버지의 기록을 읽어보다 초능력이란 것에 대해 살짝 고심이나 동경을 해보며, 그저 평범하게 살다 명이 다해 죽는 것.
이게 이 세상에서 내가 맡은 소임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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