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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n 13. 2023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자기관리가 진짜 철저하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팀원들과 스몰토크 하다가 들은 칭찬이다. 요즘 칭찬을 들으면 기쁘다 보단 갸우뚱하는 느낌이 먼저 들 때가 많은 것 같다. '선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갓생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랬다. 갸우뚱은 고민으로 이어지고 깊어진 고민은 그대로 글감이 되니 글 쓰는 입장에서 보면 좋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건데, 내 자존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넓은 아량을 베풀며 다시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자기관리"라는 멋진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다. 하릴없는 망상은 할 일들을 망각시켜, 성실함을 상실한지 오래다.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로 열심히 자기 위로를 할 뿐이다. 어제는 침대라는 마성의 덫에 파묻혀 미뤄뒀던 집안일을, 오늘은 글 쓴다는 핑계로 내일의 나에게 굳건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에게 자기관리라니. 역시나 이건 갸우뚱할만한 말이었다.


이 오해는 내가 하고 있는 하지 않는 것들에서 비롯되었다. 집에서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끼니 사이에 군것질은 하지 않는 것. 그래도 살이 찌면 식사를 하지 않는 것. 쓰다 보니 침착맨이 금연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금연은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하는 가장 쉬운 도전


내가 잘 하는 자기관리들도 그렇다. 필요하다 생각하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가만히만 있어도 마치 모바일 게임의 자동 사냥처럼 목표가 저절로 달성된다. 대신 뭔가를 해야 하는 것들은 잘 못한다. 대표적으로 운동이 있다. 겉으로는 바쁘네 뭐네 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더 잘 안다. 그냥 하기 싫고 게으른 게 맞다. 그래서 내가 "철저한 자기관리"라는 말을 듣는 것은 정말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분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한다.


요즘 많은 고민들이 이 결론으로 귀결되는데,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도 역시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되는 자기관리들은 시간을 버는 자기관리다. 술 마실 시간에, 밥 먹을 시간에 다른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하지만 해야 하는 자기관리는 정 반대다. 운동 자체도 싫어하지만 내가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희생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하기 싫은 기분이다. 시간 효율이 좋은 자기관리라도 철저히 열심히 해서 그래도 적당히 잘 살고 있다고 변명거리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양심이 슬슬 간지러운 게 느껴지니 이만 집안일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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