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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Apr 11. 2023

'첫 만남 프로젝트'라는 예방주사_1

2. 장치

1. 우리 처음 만난 날


매년 3월 2일은 교사와 학생들이 처음 만나는 날이다. 그래서 초등교사의 한 해는 1월 1일이 아닌, 3월 2일 시작이다.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어떨지를 추측하며 기대와 두려움으로 교실에 들어선다. 교사도 올해 만날 아이들은 어떨까? 어떻게 한 해를 잘 보낼까?를 생각하며 첫 만남을 준비한다. 한희정의 노래 <우리 처음 만난 날>은 “수많은 바람은 그저 우릴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연인들의 첫 만남에서 부푼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만나는 것처럼, 교사와 학생들 간에도 한 해를 시작하며 각자에게 바라는 수많은 바람이 있을 것이다.    

  

연인사이에도 기대가 너무 크면, 더 쉽게 부서지고 갈등이 생긴다. 하물며 교사와 학생 간에는. 그러니 애초에 기대를 하지도 받지도 말고 만나라는 의미였을까? 수많은 바람으로 상처만 더 남겼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후배들을 걱정하면서 내려온 말이었을까? 교직에서는 ‘처음 만날 때 아이들 앞에서 웃지 마라.’ ‘3월은 잡아야 한다.’ ‘처음에 잡다가 서서히 풀어줘야 한다.’는 선배들의 경고가 전해졌다.        


안타깝게도 나는 착하게 생겼다. 웃지 말아야 한다는데… 웃상이다.(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학창 시절에도 누구랑 크게 싸워본 적도 없었다. 주변에서 쌍욕을 들을 일은 물론이고, 할 일도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자랑이 아니다!) 


신규로 첫 담임을 맡은 해에 내 부풀었던 기대와 이상이 깨지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본능적으로 교사의 첫인상을 간파했다. 24년 동안 청정지역(?)에서 살다가, 선생님으로 교실에서 섰던 나는 매일 쌍욕을 듣고, 아이들의 싸움을 목도했다. 그때 나는 그저 하루하루가 지나가기를 버텼다. 


2학기 말이었다. 같은 학교의 한 선배가 나에게 내년 첫 만남에는 스모키화장도 하고, 세 보이게 옷을 입으라며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근데 스스로 그게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예전 시트콤에서 박하선 배우가 가죽재킷을 입고, 아이라이너를 진하게 치켜올린 채, 복식호흡으로 학생들에게 야야야! 를 외치는 모습. 나에게도 그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애초에 그런 카리스마나 키가 크고 근육이 막 우락부락해서 비주얼적으로 압도할 수도 없다면, 나만의 방법이 있어야 했다. 나는 교직에서 살아보려고 여러 연수를 쫓아다녔다. 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서 운영하는 <신규교사를 위한 새 학기연수>, 정유진 선생님이 운영하는 공부모임 <행복교실>, 그 외의 여러 연수를 찾아다녔고, 수많은 책을 읽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만큼 했다는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모두 3월의 중요성을 말했다. 허승환 선생님은 책 제목부터 <황금의 2주일을 잡아라>고 했다. <행복교실>에서는 아예 ‘첫 만남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여서 선배들이 했던 프로그램들을 전수해 주었다. 그만큼 아이들과 첫 만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핵심은 첫째, 교실 안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기 위해 예방을 철저하게 한다. 둘째, 갈등이 발생했을 때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2. '완벽하지 않다'는 숨구멍 하나 


시간이 꽤 흘러 두 번째 담임이 되었을 때, 나는 잘하고 싶었다. (이 정도로 노오력했는데, 안 되면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겠지라는 마음도 있었다.) 3월의 두 주간은 황금의 주간이라고 했다. ‘첫 만남 프로젝트’에서 가르쳐 줄 것들이 많았다. 학급경영을 민주적이고 따뜻하게 하는 선배들이 진행하는 그야말로 검증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계획했던 것은 다음과 같았다.                 


교사소개, 첫 만남 이야기(색연필 이야기 등으로 스토리텔링), 기본규칙(우리 반 울타리) 소개, 학급생활순서 안내 (수업시간, 이동시간, 쉬는 시간) 급식줄서기, 책상과 사물함 정리, 친구 알아가기, 자신 알아가기(진로교육), 학급 세우기(학급규칙 만들기), 학급일과 가이드라인 만들기, 모둠 세우기, 의미 있는 역할(1인 1역) 정하기, 집중구호, 의사소통방법(목소리크기, 경청의 중요성), 도덕성 단계, 문제해결방법, 공부방법(노트정리 방법 등) … 원놀이하며 서로 친해지기, 학급회의 해보기 등


이 모든 것들을 예방주사 놓듯 다 가르쳐야, 체계가 잡힌 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각각 활동마다 무엇을 할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시뮬레이션했다. 어떤 대사를 할지 입에 붙으려고, 대본도 썼다. 이렇게 하면 학급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계획했던 것을 다 했던 날도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러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달하지 못했던 날들을 자책했다. 그리고 ‘이것을 꼭 해내야 해’라는 나의 강박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당시 계획과 대본. 빼곡하게 계획을 했다ㅎㅎ



한창 첫 만남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3월의 어느 수요일 5교시였다. 그날 나는 아이들끼리 서로 친해질 수 있도록, ‘원놀이’를 준비했다. 책상을 교실 양 옆 구석으로 밀고, 나와 24명의 아이들은 의자만 가지고 와서 동그란 큰 원을 만들어 앉았다. 본격적인 원놀이를 하기 전에, 준비놀이인 <도미노 박수>를 안내했다. 교사 먼저 박수를 한 번 치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한다. 전달받은 방향으로 박수를 한 번씩 치면서 이어나간다. 박수가 도미노처럼 끊김 없이 이어져서 한 바퀴를 돌아 시작했던 내게 오면 성공이었다. 중간에 실수하는 친구가 있으면 “괜찮아”라고 말하기로 약속했다. 


몇 번의 실패가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비로소 한 바퀴가 돌았다. 마침내 성공하자, 아이들이 크게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리고는 한 목소리로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원래 <도미노 박수>는 한두 번 하고 끝내려고 했던 연습놀이였다. 그날 우리는 <도미노 박수>를 꽤 오랫동안 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내고 보니, 전달해야 하는 가정통신문을 깜빡 잊고 못 나눠주었다. 완벽한 하루였다고 자신했던 내 기분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른 반은 다 전달해서 아이들이 가져갔을 텐데… 우리 반은 못 받아서 어떡하지? 학부모들이 따지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에 휩싸여서 잠이 오질 않았다.       

 

가정통신문 하루 늦게 나눠준다고 뭐라고 할 사람?! 흔하지 않다. 아이들이 한 마음이 돼서 뭔가 좋아하는 일은 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의 감격보다도 가정통신문 잊은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3월 첫 2주라는 허니문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반에도 갈등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검증된 예방주사를 잘 놓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하고, 준비하고, 실행했는데 문제가 터진다고?!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에게도 괜히 화가 났다.   

   

3월이 끝나갈 무렵,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왜 내 마음과, 내 의지와, 내 열정과 다르게 갈등과 문제가 계속 생기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책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고, 친한 동료들에게도 전화해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에게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얘들아,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아.”


수업 중에 아무 맥락 없이 말했다. 그런데 말을 뱉고 나자, 몸도 좀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나니, 아이들과도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교사라면 이렇게 해야 해!’, ‘아이들 앞에서 실수하면 안 돼.’ 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스스로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다는 말을 뱉고 나니 숨구멍이 하나 트인 느낌이었다.  






('첫 만남 프로젝트'라는 예방주사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예방주사 맞아도 감기 걸린다. # 다시, 우리 처음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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