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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Oct 24. 2021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인사는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입관식, 발인, 장례 미사, 납골당 봉안 예식에도 그 차례는 꼭 들어있었다.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대체 언제까지 마지막인 걸까. 아무리 반복해도 나는 여전히 마지막이 아닌 것 같은데.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알지만 아빠가 어디로 가버렸다는 느낌도, 영영 헤어지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리 눈물이 계속 나는지.


발인 날은 유난히 화창했다. 맏이인 나는 영정 사진을 품에 안고 행렬 선두에 섰다. 아빠,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며칠간 이어지던 긴 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집에 가는 거야. 장례식장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경사로를 지나 사흘 만에 마주한 하늘은 새파란 봄날이었다.





장례미사는 아빠와 엄마가 결혼식을 올렸던, 그리고 바로 한 달 전까지도 같이 다녔던 성당에서 드렸다. 나와 동생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은 동네 성당이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아담한 성전은 가득 찼고, 그중 많은 분이 화장터까지 동행해주셨다. 오랫동안 외롭게 살던 아빠의 마지막은 그렇게 사랑으로 풍성했다. 그래서 나는 미사 중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화장터 행렬 내내 흐느끼며 부축을 받던 엄마는 관이 가마로 들어서려는 순간 앞으로 힘껏 뛰어들었다. 주위 어른들이 엄마를 다급하게 붙들었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우리 이제 집에 가는 거라고.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음에도 아빠의 육신이 작은 유골 단지에 들어갈 만큼 연소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비참했다.


봉안식까지 끝난 후 기나긴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우리 집 거실은 어딘가 낯설고 추웠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힘없이 저녁거리를 시켰다. 패잔병처럼 초라한 기분이었다. 구멍이 뻥 뚫려서 불완전해진 느낌. 앞으로도 영원히 비어 있을 자리. 나는 조용히, 이제 죽을 때까지 품고 살아야 하는 고통이 하나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아빠가 죽고 한 달 후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즈음 엄마와 나는 어디엔가 외출했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식당에 들어갔다. 수색이 진행되던 며칠간 어딜 가나 그랬듯 TV 중계가 나오고 있었고, 다들 유가족이 된 기분으로 깊은 우울에 잠겨 있었다.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보던 엄마의 입에서 이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저 사람들을 다 찾을 수는 있을까...⌟


그때 깨달았다. 아빠의 온전한 시신을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게,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버릴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시신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을 거듭해서 일깨워주기 위한 예식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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