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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Oct 24. 2021

뭐가 그렇게 다 아쉽고 미안해서





장례식 사흘 중 어느 날엔가 비가 내렸다. 화장실 가는 길에 비 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마지막 가족 나들이를 생각했다. 수술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다음 날이었다. 평소에도 주말이면 아빠는 뒷산에나 가자, 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나와 동생은 늘 귀찮아했었지만 그날만큼은 순순히 따라나섰다. 우리는 뒷산 체육공원에 올라가 서로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며 깔깔거렸다. 어쩌면 불안한 마음을 지우고 싶어서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같이 갈걸. 그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났다. 이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온갖 사소한 일들이 다 미안해졌다. 그때로 돌아가면 또 귀찮아할 거면서. 사실은 자식들이 적당히 게으름 피우고 말 안 듣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잖아. 우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동생이 곁을 지나가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곁에 멈춰 섰다.


⌜그만 울어...⌟


뭐라고 반응할 힘도 없었다. 동생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푹 쉬더니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항상 나한테 우리 집 기둥이라고 했었는데, 아빠의 죽음 앞에서 나는 엉망진창으로 무너졌고 동생은 의젓했다. 그때까지 믿어온 '나'는 온통 조각나고 흘러내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강하지도, 굳건하지도, 의지할만하지도 않았다.




입관식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는 관에 누워 있는 아빠 주변에 둘러서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언제 챙겼는지 가족사진과 제일 좋은 양복, 그리고 손때가 묻은 작은 나무 십자가를 아빠 손에 쥐여주었다. 아빠가 의식을 잃은 이후로 엄마는 앉아서도 누워서도 그 십자가를 쥐고 쉬지 않고 중얼중얼 기도했다. 나는 매일 그 모습을 보면서 아빠를 잃으면 엄마가 마지막 기댈 곳인 신앙마저 잃는 건 아닐지 겁이 났었다.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라는 할머니의 말에 가슴이 다시 먹먹해졌다. 군것질을 좋아하던 아빠가, 항상 식이요법에 신경 쓰느라 고기를 한 번 구워도 아빠 것은 따로 굽던 엄마가 떠올라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느라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나 다음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외쳤다.


⌜나는... 나 정도면 착한 딸이었다고 생각해!⌟


그 한 마디에 눈물 섞인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게 영원한 이별이라도 꼭 미련과 후회만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모든 게 항상 완벽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썩 괜찮은 삶을 함께 했었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이 정해두신 때가 되어서 헤어지는 거라면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돼. 나는 아빠가 이 세상에 있어서 행복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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