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와 재미있게 연애하는 법
서른다섯, 새로운 언어를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에 남편의 '주재원 발령'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이벤트로 갑자기 낯선 도시에서 살게 됐다. 당시 내게 베이징은 너무나 낯선 언어의 도시였지만 설렘도 있었다. 포털 홍보실에서 오래 근무한 나에게 중국은 ‘IT 선진국’이었다. 위챗, 타오바오, 디디츄싱...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중국을 다양한 서비스와 관련 기사들로 확인했다. 그 나라의 수도에 가서 중국어와 문화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니 생각해보면 모두가 부러워할 일이 아닌가? '콘텐츠 덕후'인 나는 다양한 중국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만 해도 재미있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중국산 콘텐츠도 편하게 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남은 인생, 심심할 틈 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전 세계 사분의 일을 담당하는 중국인들만의 문화와 브랜드도 덤으로 파보자!라는 아름다운 결심이 섰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꽤 괜찮게 해야만 했다. 나는 꽤 큰 꿈을 안고 중국어를 시작했다. 이, 얼, 싼!!!
평범한 회사원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으로, 그리고 베이징 곳곳을 탐험하는 도시 산책자로 거듭났던 지난 5년. 나의 프로필 한 편엔 ‘중국어와 연애 중’이라는 글이 콕 박혀 있었다. 진짜 그 문장처럼 연애하듯 중국, 중국어에 빠져 지냈다. 살림도, 육아도 뒷전으로 밀어버려서 나를 걱정하거나 의아해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나도 몰랐다. 내가 서른다섯에 무언가에 이렇게 빠지게 될 줄은, 그것이 외국 나라의 언어, 게다가 중국어가 될 줄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인 새로운 언어를 만났고, 나는 그 세계의 문을 아주 살짝 열었지만 이전과는 완벽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매일 중국 드라마를 보고, 중국 책을 읽고, 중국 음악을 듣는다. 그러니 베이징에서의 짧다면 짧은 5년 간의 시간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늘 즐거운 척(?)을 하고 다녔지만 사실 중국어를 공부하는 동안 여러 번 벽에 부딪혀서 좌절했다. 엄마라는 역할에도 충실해야 했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도 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서른다섯에 새로 배운 외국어로 내 삶에서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간 확실한 목표와 성취만을 위해 달려온 내게 매우 이질적이고도 고민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종종 다 때려치우자~~~ 고 푸념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재미있어서.
전혀 들리지 않던 드라마 대사들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을 때의 희열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 희열의 강도가 고민과 좌절을 넘어서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것이 (치열하게 분투하며 살아가야 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삶의 쓸모없는 ‘잉여’라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 즐거우니까. 그렇게 나는 중국어를 통해 '쓸모'가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믿음을 처음 만나게 됐다.
고대 철학자 세네카는 <철학자의 위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부가 당신을 위로해 줄 것이며,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공부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면 슬픔과 근심, 혼란스러운 시름의 고통이 침입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공부야말로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다.’
정말 그랬다. 이방인이라는 낯선 신분에 한 없이 외로울 때도(춘이 오 년 간 단 하루도 휴가를 쓰지 않고, 평일에 저녁을 함께 먹은 날이 손에 꼽는대도_이거슨 외노자의 삶), 삶과 일상에 대한 고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도 나는 중국어라는 보호막으로 숨어들었다. 중국어는, 아니 새로운 배움은 나의 기쁨이자 위로이자 가장 좋은 친구였다.
늦은 나이에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살다 보니 매일 이불 킥 할 일들이 마구 양산됐고(관련 에피소드는 ‘아주 건방지거나 공손한 이방인’ 꼭지로 묶고 있다), 중국어를 잘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을 만큼 헤매고 다녔다. 중국어를 시작할 때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하던 ‘알리바바 취직의 꿈’도 이루지 못했고,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고, 그 흔한 자격증도 아직 없지만 누구보다 즐겁게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쾌하다.
우리는 평생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인간들이니 언어에 있어서 만큼은 늦은 때는 없다고 말해도 되려나. 설사 너무 늦었대도 뭐 어떤가? 남일 같은 '백 세 시대'의 주인공이 나일지도 모르고, 기대 이상으로 중국인들은 기똥차게(?) 많고(이 점만은 보장할 수 있다), 중국 콘텐츠와 여행지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대가가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일상을 조금 더 활기차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보는 건 어떨까. 새로운 언어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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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