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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9. 2021

그래서 오늘 숙제가 뭔데?

상상력이 폭발하는 창의적인 세계

나에게 외국어는 거의 음악이다. 낯선 나라의 작은 도시, 작은 여관의 작은 방에 벌러덩 누워 있는 저녁, 창을 통해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어오면 내가 정말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실감을 한다. 그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온갖 악기들의 합주곡 소리 같고, 엄마가 “밥 먹어라!”하고 부르는 소리는 소프라노 가수의 아리아같다. 대도시 기차역의 돔에 부딪쳐 돌아오는 시끌벅적한 소리는 대교향악이다. 말을 모른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243p


예전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 친구가 한글 자막이 없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래서 주인공은 누가 죽였냐’는 문제에 대해 어학당 사람들과 거칠게 토론했다는 얘기를 듣고 비웃은 적이 있었는데, 남 얘기가 아니었다. 내가 그러고 있었다. 중국어 귀는 뚫릴 생각을 않고, 선생님의 말하기 속도는 갈수록 빨라져서 따라가기가 벅찼다. 10년 전에 중국어를 세 달 배웠다는 이유로 나는 호기롭게 ‘기초반 A’가 아닌 한 단계 높은 ‘기초반 B’를 신청해 버렸는데 당연히 내 수준에는 높았다. 아, 사실 당시 나는 수준이라고 할 게 없는 지경이어서 수준이 맞지 않았던 게 아니라 첫 시간에는 선생님 말씀이 아예 안 들렸다. 수업 중에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며 영혼이 탈탈 털리고 있는 나를 눈치챈 선생님은 첫 번째 쉬는 시간이 되자 친절히 내 자리로 오시더니 “개강 후 3일까지는 반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붕어처럼 입을 크게 뻐끔거리며 몇 번이나 일러주셨다. 그것은 '니가 있을 곳은 A반이니 얼른 이 반에서 사라져'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냥 버텼다. 


몇 주 버티니 눈치로 대강 알아듣는 능력이 생겼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숙제. 숙제를 받아 쓸 때면 이미 그날의 집중력을 모두 써버리고 난 후였기에 숙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이 끝나면 옆자리 친구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오늘 숙제가 뭐야?


친구의 대답도 사실 100% 확실한 건 아니어서 반 위챗 방에서는 숙제에 관한 끝장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단어만 외워가도 된다느니, 문장도 만들어야 한다느니, 녹음을 해야 한다느니, 다들 아주 독창적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매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숙제가 뭔지 토론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고 있자니 한심했다. 영화 속 진범을 토론했다던 친구를 비웃었던 예전의 내가 부끄러워지면서 그 정도의 심오한 주제를 다룰 수 있었던 그들이 그저 부러웠다. 




중국어가 내게 안겨주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12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는 그 사실만큼은 기뻐서 첫사랑에 빠진 스무 살 여대생처럼 자꾸만 비죽 비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일에 찌들어 있던 워킹맘에게는 22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같은 반 멕시코 청년의 수염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보다 작았던 캠퍼스도, 매일 똑같은 양념을 쓰는 것이 분명한 학교 식당의 급식도 찬란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말도 더 이상 더듬을 수 없을 만큼 버벅대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학생인 것을.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굴리며 나는 매일 교문으로 룰루랄라 미끄러져 갔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말하기 실력 향상을 위해 간단한 질문들을 많이 했다. “주말에 뭐 했나요?, “취미가 뭔가요?”, “자유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요?”, “하교 후에는 무엇을 할 예정인가요?” 등등. 중국어가 짧았던 나는 대부분의 질문에 ‘喝啤酒(맥주를 마신다)’라고 대답했다. 더듬지 않기 위해 익숙한 문장을 이용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칭따오 한 캔이 500원인 나라에 ‘맥주 애호가’인 내가 왔는데, 물처럼 들이켜지 않는다면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대답 속의 나는 하교 후에도, 주말에도, 자유 시간에도 맥주를 마셨다. 내가 ‘흐어’라고 입을 떼기 시작하면 반 친구들은 ‘쟤, 또 시작이네’라는 표정을 지으며 킥킥 웃기 시작했다. 당시 기숙사에 살던 멕시코 청년의 대답은 언제나 ‘在宿舍休息(기숙사에서 쉬어요)’. 내게 타코를 맛있게 먹는 법을 살갑게 알려 주던 그 청년 입에서 ‘쑤셔(한국 발음으로는 조금 웃기지만 중국어로 기숙사가 ‘쑤셔’다)’가 나오면 나도 킥킥 웃었다. 쟤, 또 시작이네. 어쨌든 우리 반에는 심각한 술고래 한 명과 기숙사에서 쭉 쉬고 있는 히키코모리 한 명이 존재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학교 어학당이다 보니 운동회나 소풍, 장기 자랑 같은 프로그램들이 정기적으로 있었는데 재미있으면서도 고역이었다. 운동장에서 ‘구슬 안 떨어뜨리고 끝 사람에게 보내기’, ‘엎드려서 오래 버티기’, ‘훌라후프 1분 기록’ 등 초등학교 이후로는 해본 적이 없는 각종 게임에 참여했다. 나는 승부욕의 화신이라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고역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열심히 했다. 노래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중국 노래를 배우고, 처음 들어보는 중국 시인의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나름 이곳의 핫플레이스인 '798 예술 단지'에서 선생님이 나눠 준 사자 성어의 의미를 지나가는 중국인에게 물어보는 숙제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친절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사자성어가 담긴 쪽지를 보여 줬다. 아주 친절한 설명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반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각자가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했는데 이번에도 다들 어찌나 독창적으로 의견이 분분한지 놀라웠다. ‘크리에이티브’에 관심이 많던 나는 줄곧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에 대한 글들을 읽곤 했었는데 이제야 제일 좋은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외계어 속에 일상이 있으니 삶은 상상력으로 가득 찼다. 


아주 가끔 중국어로 꿈을 꿨다. 그런 날이면 왠지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혹시 귀가 뻥 뚫린 것이 아닐까 기대하며 티비를 틀면 역시 계속 안 들렸다. 


두 개의 계절이 지나자 선생님의 중국어만큼은 깨끗하게 들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세 시간씩 앉아 있었던 엉덩이 힘 덕분이었다. ‘술고래’의 명예를 생각해서 세 번째 학기 기말고사의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한국식 소맥’으로 정했다. 소맥 비율 및 제조법을 포함해 아주 정성스럽게 PPT를 만들었고, 진심을 담아 발표했다. 시식회는 점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숙제를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

맛있었던 학교 식당 밥. 
당시 발표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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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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