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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0. 2021

버스 문에 껴서 죽을 뻔했다.

이방인에게 정말 필요한 동사들

거리를 걷다가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미국 꼬마가 막힘없이 유창하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들도 저렇게 영어를 잘하는데’하고 생각하며 놀랄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고, 일일이 놀랄 만한 일이 아닌데도 왠지 모르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슬픈 외국어>, 168p


언어를 못한다는 것이 단순한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야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교 수업에 늦어 만원 버스를 꾸역꾸역 탔는데 목에 맨 머플러가 버스 문에 껴버린 것이다. 몸의 중심이 뒤로 확 쏠렸고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뒤통수를 문에 세게 들이받기 전에, 머플러가 내 목을 더 조여오기 전에 나는 말해야만 했다. 


-기사니임~~~~머플러가 문에 꼈어요.


긴박한 그 순간, ‘꼈다’는 동사를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이 머리를 강타했다. 제길. 학교에서 ‘토론하다, 교류하다, 단련하다’ 따위의 쓸데없는 동사만 배웠다. 이방인에게 필요한 건 ‘꼈다, 빠졌다, 쌀 것 같다’ 같은 살아 있는 동사라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아주 현명한 행동을 했다. 마구 비명을 지른 것이다. 놀란 기사는 내 쪽을 유심히 살폈고, 문을 다시 열어줌으로써 나를 죽음에서 구해줬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안, 나는 뒷문에 서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거장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내게 들리는 보안 요원의 목소리. 


-치앤멀, 치앤멀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았는데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보더니 보안 요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짜증스러워진다.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치앤멀, 치앤멀”만 외친다. 공포심이 밀려오니 이해력이 강화된다. 치앤먼(前门). 뒷 문이 안 열리니 앞문으로 내리라는 이야기였다. 베이징런들의 얼화 현상으로 치앤먼이 치앤멀이 되었구나. 멀이 뭡니까, 멀이. 나는 괜스레 민망해서 이어폰을 꼽고 있었던 것처럼 귓구멍을 만졌다. 




오래전 한국 버스에 차장이 있었던 것처럼 베이징 버스에는 보안 요원이 한 명씩 상주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실로 다채롭다. 사람이 많을 때 승객들이 모두 내린 것을 확인하고 기사에게 알려주거나, 휠체어나 캐리어, 장바구니 등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 주기도 하고, 버스가 차선을 바꿀 때 창문으로 손을 쭉 내밀어 깃발을 흔들기도 한다. 물론 나처럼 멍청한 외국인을 처리하기도 하고, 때로 아이들이나 어르신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서 앉아 있는 젊은이들의 자리를 빼앗기도 한다. 중국은 어디에 가나 어린이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심이와 버스를 타면 꼭 누군가 양보해 주거나 보안 요원이 자리를 마련해 준다. 문제는 보안 요원의 목소리가 화가 난 것처럼 너무 크다는 점이다. “휴대폰 보고 있는 젊은이,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요. 핑크색 옷 입은 어린아이가 그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눈치코치로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외국인에게는 공포스러운 친절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을 모르는 심이는 아저씨가 자기를 혼내는 줄 알고 울음을 터트렸다. 금방 내리니 괜찮다고 거절해도 자꾸 권해서 한 정거장만 가면 내리는 데도 자리에 앉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서 있고 싶다는 아이에게 제발 앉으라고 사정한 적도 있다. 




말하기, 읽기, 쓰기, 그리고 듣기. 언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 뭐가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냐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잘 들어야 한다. 생각보다 중국어 듣기가 도무지 진전될 기미가 안 보여서 나는 계속 깜깜한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팅부동(听不懂, 못 알아들어요)


그리하여 한동안 내가 제일 많이 말한 문장은 이것이다. 10여 년 전, 당시 남자 친구이자 지금의 남편과 중국어라는 걸 달랑 2개월 배운 이후 겁도 없이 상하이로 배낭여행을 갔더랬다. 우리는 배운 중국어를 최대한 써먹자며 문장 몇 개를 열심히 외웠다. 택시에 탔고, “예원(유명한 정원)으로 가주세요”라는 문장을 나름 유려하게 구사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우리를 중국어 능력자라고 오해하신 택시 기사님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계속 말을 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팅부동이었다. 멋쩍게 웃으며 팅부동을 연발했는데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거는 기사님. 답답하고 난처한 마음에 “Can you speak English?”라고 했더니 놀란 기사님이 “팅부동”을 연발했다. 그때 우리 택시에는 팅부동만이 어색하고 아름답게 울려 퍼졌었다. ‘상하이 팅부동 사건’ 이후로 우린 “중국어를 언제 써먹겠어? 하하” 웃으며 중국어를 과감하게 때려치웠다. 그땐 정말 몰랐다. 10년 뒤 베이징에서 여전히 팅부동을 외치고 있을 줄이야. 


팅부동의 세계는 너무나 매력적이라 한 번 빠져들면 나오기가 힘들다. 알아듣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웃을 때 적당히 웃어줘야 소외감이 덜어지는 친근한 그런 세계, 이제는 조금 더 들리겠지 기대하고 한 번 더 들어도 여전히 안 들리는 놀라운 그런 세계, 분명히 같은 반이 분명한데 숙제를 조금씩 다 다르게 해 오는 창의적인 그런 세계, 영어가 갑자기 친근해지고, 잘 들려서 영어 귀가 뚫린 것 같은 착각마저 주는 너그러운 세계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베이징에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가끔 건방지고, 가끔 공손하고, 자주 이상한 외국인이 되어 평생 이불 킥을 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매일 줍고 있었다. 창피할 때면 나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입을 가리고 웃으며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 “제가 사실 어제 베이징에 도착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중국어고, 중국이고 하나도 모른다, 어쩔래'라는 제스처를 적당히 섞어서. 그렇게 나는 꽤 오랜 시간 ‘어제 도착한 이방인’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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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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