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시간

by 심루이

북경에서 요즘 최대 트렌드인 ‘혼밥’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혼밥이란 집 말고 식당에서 혼자 먹는 식사를 이야기한다. 그간 한국에서 혼밥을 거의 해본 적 없는 내가 이곳에서는 일 주일에도 2-3번씩 혼밥을 즐기고 있다.


학교를 파하고 약속이 없는 날에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중국인처럼 밥을 시킨다. 학교에서 배운 식당용 회화를 써먹어 본다. 학교 책과 똑같은 답변이 나올 리 만무하므로 순간순간 당황스럽다. 중국어라고 하고 있는데 내 입은 ‘OK’를 외치고 있고, 엉망진창인 내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어주면 화색이 과하게 도는 것이 느껴져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여기저기서 배운 짧은 중국어를 생각나는대로 던지며 주문하는 내 모습은

그들에게는 가끔은 지나치게 공손하고(죄송합니다만 주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실례합니다만 몇 장의 냅킨을 가져다주실 수 있으십니까? 등의), 아마도 가끔은 지나치게 건방지다(메뉴판. 물 좀. 얼만데? 응, 엄청 좋아해 등의). 메뉴판이 벽에만 붙어 있던 어떤 식당에서는 중간에 위치한 메뉴를 먹고 싶었으나 '중간'이라는 단어가 기억이 안 나서 제일 위의 것으로 시킬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음식을 받으면, 두 눈이 이마 양 옆에 달린 한 마리의 염소가 되어 주변 중국인들이 뭘 먹는지 열심히 훔쳐본다. 늘 남의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불변의 진리 앞에 다음에는 꼭 저걸 시켜야지!!! 굳게 다짐하면서 혼밥을 마무리하곤 한다.

왜 한국에서는 어렵던 혼자 먹는 밥이 이곳에서는 즐거울까, 생각해 보았더니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인가 싶었다.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니까. 그러면 한국에서는 누가 혼자 먹는 나에게 신경 썼나? 질문해 보면 그것도 아니올시다. 그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극도로 신경 썼다. 왠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왜 그랬을까? 창피하고 부끄러울 일은 그것 말고도 널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좋아하는 책을 옆에 끼고, 잘 먹지 않던 음식을 혼자 냠냠 먹는 시간. 오! 2,400원이군, 하며 이건 왠지 혼자 여행하는 기분이잖아,라고 가끔 감격도 해 보는 시간.

누군가는 그랬는데.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하라고.

늘 그리 하리라 마음에 담고 살았지만,

일상이라는 여행은 늘 일에 쫓기는 출장 같았고, 여행에서는 호텔 조식 챙겨 먹느라, 본전 생각하느라 결코 일상처럼 보낼 수 없었던 지난날들.

이방인일 수도, 여행자일 수도, 생활자일 수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는 일상을 여행처럼 즐길 수 있는 최대의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서울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는데, 마음 먹지 못했을 뿐인지도.

어쨌거나 이곳에서는 마음을 먹었으니 혼밥 게이지를 열심히 올려

언젠가는

혼자 낡은 술집에 앉아 칭다오 맥주에 양 꼬치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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