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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22. 2022

즐겁고 행복한 아침 만들기 프로젝트 5년 차

준비물은 즐겁고 신나는 마음 

활자 중독자로서 살림을 처음 제대로 해야 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살림에 관한 20여 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많은 육아서와 아이 교육에 관한 책들을 빌렸고 읽어 나갔다. 내 인생 최대의 난제였던 ‘모유 수유’에 관한 책이 없었다는 것이 실수였지만 모든 장기가 뒤틀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던 수유의 시간도 지나가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이는 가끔은 고무줄 같고, 가끔은 스펀지 같아서 나도 모르게 막막해질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도 나는 늘 책을 읽었다. 분명 읽을 때의 나는 


맞네, 맞아.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해봐야지. 이 방법 좋다.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꾸준히 하는 것에는 쥐약인, 취미는 재미있는 생각하기, 특기는 ‘싫증내기’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ENFP’ 유형의 엄마로서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한 것이 없다. 삶을 이끌어가는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꾸준함’이라는 것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 육아나 엄마표 영어를 실천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늘 아이 숙제보다 내 공부를 먼저 하고, 챙기는 것과 빠트리는 것의 숫자가 비슷하며, 가족 워크숍, 가족 북데이 등 다양한 활동들을 ‘시작’하지만 꾸준히 해내지는 못했다. 



그런 나도 꽤 오래 잘 지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18년부터 시작한 ‘즐겁고 행복한 아침 만들기 프로젝트’. 아침 기분이 사람의 하루를 좌우한다는 문장을 어느 육아서에서 보고 결심한 것이었다. 시사점은 분명했다. 짜증 섞인 기분으로 시작한 하루가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는가?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니 아이의 아침 기분만은 신경 써라. 우울한 상태로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지 말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예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준비물은 학용품이나 일기장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마음이라는 것. ‘양치질해, 밥 먹어, 옷 입어, 양말 신어, 빨리 해’라는 재촉의 말들이 둥둥 떠다니는, 사실 제일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이라 그간 제일 중요한 준비물을 간과하고 있었네. 그때 결심했다. 꼼꼼한 엄마는 자신 없지만, 즐거운 엄마는 할 수 있으니 아이의 짧은 아침 시간만은 매일 즐거울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다른 건 다 못해도 그것만은 해보자고. 


혹시 ‘기분 일치 효과’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는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기분이 좋을 때는 상황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기 쉽고, 반대로 기분이 나쁠 때는 상황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기 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면 그날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으며, 사고도 긍정적으로 바뀌어 상황이나 사람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아침을 보내는 방법이 하루의 행동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오히라 노부타카




즐겁고 행복한 아침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그날부터 우리의 아침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인생이 한 편의 극이라면 아침의 내가 맡은 역할은 푼수데기 엄마 역할이다. 


우선 아이를 서둘러 깨우지 않는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 5분 전부터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인 ‘베스트 탐정단’이나 신나는 음악을 튼다. 아이가 슬며시 눈을 뜨기 시작하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하이톤의 목소리로 아이가 제일 기대하는 그날의 이벤트에 대해 언급한다. 오늘 심이 좋아하는 체육 수업 있는 날이네? 오늘 **이랑 노는 날이네? 내일 우리 캠핑 가는 날이네? 그러면서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며 마사지한다. 팔 쭉쭉, 다리 쭉쭉. 어릴 때 가끔 엄마가 내 두 발을 잡아당겨주면 그게 난 그렇게 좋았다. 간지럼을 태운다. 아침에 한 순간이라도 깔깔거리며 웃는 순간을 만든다. 


게임 마니아인 아이라 게임 요소를 섞는다. 아이가 한참 파닉스를 배울 때는 알파벳 자석으로 화이트보드에 단어를 만들어 두었다. 오늘은 어떤 단어가 쓰여 있을지 찾아보라고 하면 눈을 반짝였다. 옷도 안 입어, 양치질도 안 해, 멍 때리는 아침이면 누가 더 빨리 입나, 빨리 씻나 게임을 한다. 학교 버스까지 달려가는 길 위에서는 노란색 줄만 밟는 게임을 하거나 오늘은 우리가 몇 등으로 도착했을지 추측해 본다. 버스를 타면 차창으로 나를 보는 아이를 향해 핸드폰 전광판 어플로 짧은 멘트들을 써서 흔든다. 이곳은 콘서트장이야. 입 모양만으로 단어를 맞추는 신서유기표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을 하기도 한다. 


조금 과장된 행동을 선보이는 나를 보는 중국인들의 눈빛에서 가끔 ‘저 한국인 엄마 왜 저러냐’라는 문장을 읽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사람보다 내 아이의 하루가 훨씬 중요하니까! 다시 볼 일이 없을 확률이 높은 이방인 메리트를 최대한 누려본다. 


그렇게 아이와 나만 아는 즐거운 루틴으로 아침을 채운다. 이 시간에 우리는 이상한 노래나 신조어, 우리만 아는 암호들도 대거 만들어 내는 쾌거를 이뤘다.   


물론 매일 마음같이 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유난히 뭉그적거리는 날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노력하는 엄마 마음도 모르는 아이가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서 연속으로 실패의 아침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아침을 꿈꾸고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씩 참아진다. 서서히 미묘하게 나아진다. 




18년 어느 오후에 이런 결심을 한 이후로 꽤 많은 아침을 보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단순하고 맑은 마음.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다가도 엄마의 작은 동작(춤), 노래, 웃음, 눈빛(윙크) 하나에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이다. 아이가 즐거워하며 학교에 간 날이면 나의 하루도 상큼해지고, 이런 노력에도 그렇게 보내지 못한 날에는 종일 마음이 쓰여 다른 일에도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프로젝트는 아이보다 오히려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된 지 10년 차. 미리 챙기지 못해 가끔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때 스스로가 못난 엄마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육아 자신감이 떨어져 있을 때도 이 프로젝트의 존재는 위안이 된다. 살뜰히 챙기는 것은 부족하지만 즐거운 아침 만들기 프로젝트는 누구보다 잘하고 있잖아.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답게 육아하는 방법을 찾자.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더 극대화시키자. 즐겁고 따뜻한 아침의 힘을 믿자. 스스로에게 폭풍 칭찬을 해준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는 아침이면 드라마 <청춘 기록>의 엄마 대사를 떠올린다. 무명 배우에서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고, 그냥 군대를 가야 하나, 그래도 꿈을 계속 도전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 아들 혜준. 이러면 자기 밥벌이도 못한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군대나 가라고 호통치는 아빠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부모가 자식 안 믿어주면 누가 믿어줘, 밖에 나가봐, 까대려고 번호표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 천지야.” 


저 대사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갑자기 내 아이 앞에서 번호표를 받고 (까대려고) 기다리고 있는 (악마의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앞에 있는 내 아이는 뭉크의 <절규>에서 본 것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  


아이들도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끝없이 경쟁하고, 살아 남기 위해, 더 예쁨 받기 위해 치열하게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고 있지. 그러니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 즐겁고 따뜻한 아침의 역할은 꽤 클지도 모르겠다. 세상 어디에선가 이리저리 치이고, 고군분투하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처음 닿는 질문 또한 응당 이래야 할 것이다. 


“오늘 즐거웠어? 얼마나 웃었어?” 


아이의 마음과 웃음에 제일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니까. 우리는 그들의 부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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