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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Dec 07. 2022

그리움의 감각

벨소리와 지워지지 않는 숫자 

인간이 느끼는 가장 귀한 감정은 그리움이라는 생각을 한 밤이 있다. 슬픔도, 아픔도, 아쉬움도 아닌 채 누군가를,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상실의 고통을 그리움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는 때로 아주 깊은 강을 건너야만 한다. 자주 울어서 자주 물이 넘치고 자주 멈춰 서서 자주 온몸을 부여잡는다. 남은 생에 더 이상 행복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저 그리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워할 때 우리는 그다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리워할 때 우리 영혼은 약간 멍한 상태가 된다. 쉽게 희미해지지만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움은 마음이라기보다는 이미지고, 소리고, 감촉이다. 그리움을 떠올리면 전화벨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기분이 든다. 바로 마종기 시인의 <전화>라는 시 때문이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에서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각자의 번호가 없던 그 시절, 그리움의 신호는 유선 전화 종소리였다. 상대가 그곳에 없는 것을 알고 거는 전화. 잘게 흔들리는 전화 종소리가 당신의 방안을 가득 채워 당신을 덜 외롭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걸고 또 거는 전화. 이 시는 내 기준으로 그리움에 관한 가장 아련하고 아름다운 묘사다.


유선 전화의 시대가 가고 핸드폰이 일상화되면서 그리움은 주인 없는 전화번호로 옮겨갔다.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끔 그리움이 사무치면 예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단정한 안내 멘트가 네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또 걸 수밖에 없는,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었다는 선명한 표상은 숫자 1이다. 매일 시덥지 않은 농담까지 주고받았으나 이제는 영원히 읽히지 않을 메시지, 영원히 오지 않을 답장을 의미하는 숫자.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채팅방에서 나오기를 선택할 수 없는 나.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전에 우리가 나눈 대화들을 읽고 읽고 또 읽는 행위로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박준 시인의 문장처럼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되어 버린다.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그리움을 깊은 슬픔에서 구출하기 위해, 그리움을 아픔이라고만 치부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쓴다. 그리워서 쓰고, 써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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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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