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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Dec 10. 2022

삶을 이루는 질문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심이 독후감은 한결같다. "여러분은 땡땡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시작해서 "땡땡땡과 함께 하시겠습니까?"로 끝난다. 시작도, 중간도, 끝도 물음표투성이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글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훌륭한 작법이다. 대견하게도 아이가 질문이 가지는 중요한 기능과 의의를 벌써부터 눈치챈 것이다...라고 하기에는 중간에 알맹이가 영 부족하다. 아이에게 "너 생각하기 싫지?"라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으며 그렇단다. '이 정도면 아이유가 콘서트를 하는데 '다 같이 불러요'하며 마이크를 객석에 넘기고 자기는 두 시간 동안 전혀 부르지 않는 거랑 똑같은데?'라고 했더니 빵 터졌다. 우리는 동시에 그 광경을 상상했다.


어릴 때부터 받은 주입식 교육 탓도 있을 테지만 비판 의식이 부족한 나는 언제나 질문이 어렵다. 질문하라고 하면 남의 시선부터 의식하고 내 질문의 이상함과 유치함을 걱정한다. 질문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 중 너무 쉽고 엉뚱한 질문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하마터면 아이를 불러 세워 "왜 그런 질문을 해?"라고 핀잔을 줄 뻔했다.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는 이들을 부러워했으면서 정작 나는 아이 질문 수준을 검열했다.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질문의 질'에 관해 꾸중을 들은 아이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나처럼 '있어 보이는' 질문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 "이 질문 할 걸!"하고 괴로워하는 이불킥의 시간을 맞이한다.


괜찮은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괜찮은 삶을 살 확률이 높다. 인생은 작고 사소한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매 순간 질문하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왜 좋아하는지, 이번 학예회 때 어떤 공연을 하고 싶은지 등 일상적인 질문에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 한 차원 높은 질문으로 간다. 빅터 프랑클도 이렇게 말했다. "산다는 것은 바로 질문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삶에 책임지고 대답하는 것".


가장 인상적인 질문은 신입 사원 시절에 받았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늦고,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일렀던 어느 늦봄의 점심, 카페 라테를 홀짝거리던 내게 한 팀장님이 물었다.


-인생에 네 가지 종류의 일이 있어.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 앞으로 너의 시간은 어떤 일에 무게를 둬야 할 것 같아?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당연히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었으므로 칭찬 받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팀장님은 그런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듯 웃으시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인생에서 진짜로 무게를 두어야 하는 일은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우리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되기 마련이지만,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쉽게 잊히는 법이라 우리 일상에 크고 작은 구멍들을 만든다.


'그녀의 자전거'처럼 이 질문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질문을 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발등에 떨어진 급하고 중요한 일을 쳐내느라 나는 늘 조급했고,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불혹의 시간에 인생의 구멍을 메꾸고자 이 위대한 질문을 다시 마음속에서 건져 올려보니 더욱 난감하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이란 항목에 걸맞은 일은 과연 무엇일까? 오래 묵혀둔 마음이나 사과를 전하는 일, 운동을 하는 일, 내 마음을 돌보는 일, 시를 읽는 일,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는 일? 어떤 항목은 너무 가볍거나 무겁고, 어떤 항목은 너무 편협하거나 이상적이라 다른 이의 답안지를 훔쳐보고 싶은 욕구마저 들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안아주는 건 평론가 신형철의 말이다. "어떤 질문은 그것을 간절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조금은 달라지게 한다. 정말 나는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 섣부르게 정답을 채우는 대신 간절하게 묻고, 생에 필요한 다른 질문들을 찾아내는 눈을 기르는 편이 더 현명할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읽고 쓰는 시간도 좋은 질문을 찾는 방법을 향해 있을 것이다. 좋은 글의 존재 이유 또한 비슷하다. 좋은 글은 질문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무너뜨리고 다시 재정의하게 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 인생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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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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