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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3. 2024

사람에 감동받은 예스폭진지 버스 투어

귀한 한 번의 범벅

1.

대만 타이베이 여행이 처음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스폭진지' 투어다. 조금은 괴상한 네이밍을 자랑하는 '예스폭진지'는 타이베이 근교 예류-스펀 천등 마을-스펀폭포-진과쓰-지우펀을 줄인 말이다. 스펀 폭포를 빼고 예스진지 투어를 하기도 한다.


택시와 버스 옵션 중 우리는 버스 투어를 하기로 결정하고 '마이리얼트립'에서 알아봤다. 마침 지난해 스페인 여행에서 몇 개의 당일 투어를 함께한 여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동일한 일정의 다른 투어에 비해 3배나 비쌌다. 처음에는 저렴한 투어로 하고 아낀 비용으로 맛있는 훠궈나 먹자고 했다. 하지만 자꾸 마음이 아우성쳤다. 여행의 귀한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는 것이니 돈보다는 마음이 더 끌리는 쪽으로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여행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그리고 (가이드 투어 싫어하는) 초딩 심이에게는 가이드님의 말발과 재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버스투어는 대만족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감동이 있었다. 예스폭진지가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얼마 전부터 가이드를 업으로 삼았다는 새싹 가이드 봉봉님이 그 주인공으로 그는 출발 장소에 자기 몸만큼 큰 캐리어를 들고 나타난다. 그간 만난 대부분의 가이드가 최대한 움직이기 쉬운 간편한 복장이었던 걸 떠올리며 조금 의아했지만 투어 이후 개인적인 일정이 있으신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맙소사. 그 큰 캐리어에 들어 있던 건 모두 우리를 위한 물품이었다. 비가 올지 모르니까 우산, 추울지 모르니까 담요, 배터리 부족할지 모르니까 무선 충전기, 아픈 분을 위한 각종 상비약, 어젯밤 코인빨래방에서 열심히 빨았다는 뽀송한 수건, 화장실 급하신 분들을 위해 휴지와 물티슈까지... 30명이 훌쩍 넘는 투어 인원 모두를 위한 물품이 준비되어 있던 화수분 캐리어의 명칭은 '봉봉상회'.


그뿐이 아니었다.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환전 서비스와 안정된 와이파이를 위한 핫스팟 공유 서비스, 여행지 포토 스팟마다 몸을 날려 찍어주신 덕에 탄생한 인생 사진 서비스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타이베이 인기 레스트랑 리스트를 단체방에 보내 주시더니 예약이 필요하신 분들은 투어가 끝나도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할 때는 뭐 이런 사람이 있지 싶었다. 봉봉님은 '순수와 열정' 그 자체였고 오랜만에 그런 사람을 만나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해타산적인 관계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의 마음에 감동받은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백미는 투어 막바지,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함께 합창하자고 하실 때였다. 노래까지 만드셨다니 이 사람 찐이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지. 심이와 나는 콘서트에 온 것처럼 핸드폰 불을 켜고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뜨거운 반응에 봉봉님 왈, '내일 또 와주시면 안 돼요?'.


시먼딩 어딘가에서 하차한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고 가이드 투어는 별로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심이도 호텔방에서 가이드님께 드릴 감사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했더랬다. (핫스팟마저 공유해 주시는 갓이드님...으로 시작되는 메시지)


사람의 진심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몇 개의 계절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가끔 가이드님을 떠올리며 낯선 이의 안녕을 바라고 있으니까. 흔치 않은 일을 가뿐하게 해내게 하는 사람들이 좋다. 비용 문제로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셨다고 한 것 같은데, 지금쯤은 올리셨으려나. 서울에서 누군가 꽃길만 걸으시길 간절하게 기원하고 있습니다. 


2.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일본 작가 마스다미리의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를 읽는데 작가의 대만 여행기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마흔이 되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할까 봐 마음이 조급해진 작가가 즉흥적으로 타이베이 패키지여행을 떠난 이야기였고 얼마 전에 예스폭진지 버스투어로 다녀온 스펀 천등 축제도 언급되었다. 다시 한번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사람이 미어터졌던 스펀 천등 축제에서 수백 개의 천등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한 번으로 좋다.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도, 이 한 번은 귀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이국의 욕조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스펀 오래된 기찻길에서 천등을 날리며 왜 그렇게 뭉클했을까 생각해 본다. 천등에 붓펜으로 소원을 쓰면서, 천등을 날리면서 이것이 내 인생의 딱 한 번의 경험이 될 것이라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101 타워 전망대 야경도, 예스폭진지 버스투어도 한 번이면 족하다. 같은 도시를 또 간다고 해도 다시 천등을 날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충분한 한 번이다. 가이드님과의 만남도 딱 한 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받은 환대는 여전히 생생한 것처럼.


어찌 보면 여행은 '귀한 한 번'의 범벅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봉 콘서트가 열리던 때, 우리 셋 사진을 많이 건졌다.
아름답던 진과스
끝내주는 인파의 지우펀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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