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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6. 2024

대만식 귀여움과 유머에 대며드는 중

캐릭터와 스탬프 

타이베이에서 여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그녀는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사람들이라고 자랑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만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라고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친절하고 따뜻하다는 것이고, 캐릭터는 그것의 또 다른 구현이다. 대만의 캐릭터에는 조금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류영하, <대만산책>


1.

대만의 나긋함을 배가시키는 것은 곳곳에 뿌려진 아기자기함이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대만에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많다. 베이터우로 가는 기차도, 호텔 1층 편의점도, 귀여운 캐릭터가 우리를 맞이했다. 타이베이 숙소였던 저스트슬립 시먼딩 1층에는 키티로 도배되어 있는 헬로 키티 편의점이 있고 숙소 화장실 문에는 변기에 앉아 힘을 주는 사람의 형상이 귀엽게 그려져 있다.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가 탄 타이베이행 에바항공은 온 기내가 헬로키티 일색이었다고 한다. 의자커버, 쿠션, 기내식 수저뿐 아니라 화장실 휴지까지 키티 무늬일 만큼 철저하게 귀여웠다. 탑승 중에 나오는 음악도 '삐코삐코뽀콘'스럽게 하여간 명랑해서 사악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는데 공감했다. 대만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진라면 순한맛 같은 대만. 


2.

대만의 이런 이미지를 거드는 것이 스탬프 문화다. 대만 관광지 곳곳에는 귀여운 기념 스탬프가 마련되어 있어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좋아하는 초딩 마음을 훔치기 충분했다. 작은 노트를 챙겨간 심이는 열심히 스탬프를 찍었고 나도 옆에서 온 힘을 모아 귀여운 도장을 누르며 동심을 되찾는 일은 외외로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이베이 전철역에도 역의 특징이 새겨진 스탬프가 있다고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해 아쉽다. 


<대만산책>의 저자는 앙증맞고, 소박하고, 실용적인 면모를 담은 각종 결과물을 '대만식 디자인'이라고 불렀다. '착한 마음 덕분에 그런 디자인이 나오는지, 아니면 그런 디자인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사람들이 착해지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대만이다. 


대만산책은 대만에서 만난 위트 있는 공익 문구들도 많이 소개한다. 

-엘리베이터 옆에 적혀 있는 '나는 건강하니까 계단으로 간다'라는 광고 카피.

-대학 보건소 복사기 앞의 '지구를 아낀다면 복사를 하지 마라'라는 문구.

-현금인출기 앞의 '촬영하고 있으니 웃어주세요'라는 문구.

-'형(오빠)이 피우는 것은 담배가 아니라 고독이지만, 내가 치우는 것은 형(오빠)이 함부로 버린 담배랍니다'라는 담배꽁초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문구


한 도서관에는 '멍 때리는 곳'이라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과연 대만의 여유와 유머는 범상치 않다. 


3.

대만의 위트는 야시장, 쇼핑몰, 대로, 좁은 골목 등 어디든 퍼져 있는 무인 뽑기 기계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만 뽑기 시스템의 위엄은 상당한데, 우리나라처럼 오락실 샵인샵 형태가 아니라 몇 십개의 뽑기 기계가 구비된, 오로지 뽑기만을 위한 스팟이다. 그들은 인형, 키링 따위에 만족하지 않는다. 휴지, 이불, 훠궈 밀키트, 베개 등 온갖 생필품을 뽑는다. 물건이 빠져나와야 하는 구멍보다 물건이 더 커져 보여서 대체 뽑는 사람이 있기나 한 건지 강력한 의문이 든다. 


한 번 뽑는데 400원 정도로 한국과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라 심이는 자주 도전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집게가 물건을 잡자마자 벌려 버리는데 어떻게 뽑아?

-아니, 이 베개를 집는다고 해도 저길 통과할 수가 없어! 

라고 분노하는 심이 옆에 과자를 10봉지 정도 뽑고 함박웃음을 짓는 대만 청년들이 있었다. 


그렇게 대만의 뽑기 집게에 인류애를 상실하고 있던 가련한 초딩에게 대만 청년들이 과자 한 봉지를 나눠주고자 말을 걸었다. 자존심 빼면 시체인 심이는 '노땡큐'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과자 맛을 보고 싶던 엄마는 조금 서운했다. 


4.

대만은 영수증에도 위트를 뿌려 두었다. 영수증에 신기한 번호가 있길래 무엇인가 했더니 영수증 복권이란다. 현금 사용 비중이 높은 대만. 세금 파악이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영수증과 복권을 같이 주기로 했다. 복권 당첨을 기대하는 고객들이 알아서 영수증을 챙길테니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말 대만스러운 문제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복권의 1등 당첨금(이름하여 ‘특별장’)은 1천만 TND(TWD),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4억 2천만 원 정도! 외국인도 여권을 들고 가면 당첨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해서 여행 내내 영수증을 차곡차곡 모았다. 추첨 일은 두 달에 한 번, 홀수 달 25일에 이루어진다. 복권 당첨 여부는 간편하게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에서 “台灣發票”(Taiwan Fapiao ;대만 영수증)을 검색하면 여러 가지 종류의 앱이 나오는데, 아무거나 다운로드해서 QR코드 찍듯이 인식하면 된다. 당첨되면 다음날부터 농협에서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로또와는 달리 대만 영수증 복권은 지정된 기간이 있어서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날짜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대망의 25일,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확인한 결과 모두 땡. '당첨금 타러 대만 좀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여행을 오래 기억하는 즐거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대만의 단호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의외로 전철 안이다. 다음 전철이 몇 분 몇 초 뒤에 오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전광판을 보고 역시 친절하다고 감탄하며 탄 전철 안에 무서운 문구가 있었다. 전철에서 무언가를 먹으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엄격함의 수준이 높아서 껌조차 불가능하고, 이를 어길 시 32만 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역시 대나무가 모티브인 타이베이 상징 101타워처럼 대만은 유연하지만 대쪽같은 나라다. 


32만 원에 놀라서 전철 안에서는 침도 조용히 삼켰더랬다.  

베이터우 캐릭터와 헬로키티 편의점

각종 스탬프 스팟들

이런 귀여운 걸 사고 싶게 만드는 대만
이 유쾌함이 대만이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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