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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2. 2024

무언가를 간절히 비는 시간

스펀 기찻길, 하해성황묘, 용산사에서 

SF 작가라서 믿는 건 과학밖에 없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언제나 한껏 이끌리고 만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한 사람이 어떤 것을 강렬히 염원하는지 존중으로 멀리서 나누고 싶어진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1.

대만에는 서른 가지가 넘는 종교가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대만산책의 저자는 '대만인들이 네덜란드, 스페인, 중국, 일본, 국민당 등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기에 이런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다섯 번째 특기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소원 빌기'를 보유한 나로서는 대만은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타이베이 핑시선 열차가 지나가는 스펀에서, 용산사에서, 하해성황묘에서, 골목의 크고 작은 사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무언가를 빌었다. 


운치 넘치던 스펀라오지에의 오래된 기찻길에는 천등에 붓으로 소원을 써서 하늘로 날려보내는 낭만적이고도 환경 파괴적인 퍼포먼스가 있다. (농담이고 여행객들이 날리는 무수한 천등들은 환경적으로 문제없이 처리된다고 한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소원을 적기로 했고 첫 번째 소원 작성자로 나선 심이는 '로또 1등'이라는 야심찬 소원을 적었다. 나는 심이의 야심에 신들이 노하실까 봐 '매일매일 기쁘게', '평안한 마음'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적어 균형을 맞췄다. 천등을 날리는 순간은 코믹했다. 천등 날리는 것을 도와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대만 청년들의 한국어 실력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다. 유려한 한국말로 천등 들어, 돌려, 하트, 영상, 큰 하트 등등의 다양한 요구를 했다. 사진은 또 어찌나 잘 찍는지... 깔깔. 안쪽에 불이 붙은 천등이 구름 가득한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순간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은 듯 뭉클했달까. 때로 이런 클리셰적인 퍼포먼스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신기하다. 그날 햇살이 유난히 좋고 하늘이 그림처럼 예뻐서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스펀 라오지에의 천등 퍼포먼스

2.

두 번째 기도는 우리나라 인사동과 비슷한 디화제 거리에 있는 사당 '하해성황묘'에서 이뤄졌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는데 듣자 하니 사랑의 인연을 찾아주기로 영험한 월하노인을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참배를 하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본인 혹은 자식들의 인연을 기원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사원에 서 있다 보면 옆 사람의 소원이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이곳에서만큼은 다들 비슷한 소원을 빌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재미있는 기분이 들었다. 


신이 내게 심이와 관련된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학업적, 사회적 성공보다 본인에게 맞는 좋은 동반자를 찾고 심이 역시 그에게 좋은 짝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하고 싶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즐겁게 걸어갈 수 있는 반려자를 만나는 것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고 때로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해성황묘에서도 나는 두 손을 모았다. 


용산사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1740년에 세워졌으니 세월의 깊이가 아득하다. 무엇보다 불교, 도교, 유교, 민간신앙의 신까지 모두 모신 관용적인 사원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정세랑 작가는 용산사의 건축적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기둥만 두 시간쯤, 지붕만 한 시간쯤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적었는데 화려한 사원 안에 들어가니 과연 그랬다. 


용산사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비중이 엇비슷해 보였다. 누군가는 바닥에 무언가를 던지며, 누군가는 지갑을 빙빙 돌리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까치발로 걷게 된다. 행여나 나의 기척이 그들의 간절함에 방해가 될까 싶은 마음에. 


3. 

여행 책자에 나올법한 큰 규모의 사원도 많지만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사원들이 더 마음에 남았다. 타이중, 타이난 길을 걷다 보면 '아니, 이런 곳에 사원이?'싶은 곳에 사원이 많았기에 자주 소원을 빌었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찬 마음으로 손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도를 자주 하는 내가 좋다. 무언가를 바라고 또 바라는 그 상태가 생기롭지 않은가.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는 '소원을 비는 마음과 아름다움에는 닮은 점이 우주만큼 있을 것 같다'라고 했는데 동감한다. 소원을 빌 때, 생욕이 넘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마음에서 소망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오늘은 매일 뻔뻔하게 무언가를 바라는 아름다운 백발 할머니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해야지. 

하해성황묘
용산사 
타이난 어느 골목의 사원에서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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