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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원망원 14화

몽글몽글한 빵의 동네

by 김슬기


망원에는 유명한 빵집이 여럿 있다. 대충 생각나는 곳만 추려도 대여섯 곳이 쉽게 떠오를 정도니까. 처음 망원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다름 아닌 빵순이들이 가장 나를 부러워했다. 나도 빵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주로 동네 빵집을 가거나 친구와의 약속 장소 부근에 유명 빵집이 있다면 들려보는 정도이지 빵만을 위해 특정 동네에 가본 적은 없다. 빵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내 기준에 부합하면 쉽게 맛있다 느끼는 입맛 때문일 수도, 살면서 손에 꼽게 한 두 시간 줄 서서 먹었던 맛집이라는 곳들의 음식이 슬프게도 기다린 만큼이었던 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래서 빵순이 지인들이 마치 바늘로 콕 찌른 풍선이 포롱포롱 공기를 흩뿌리며 날아다니듯 쉴 새 없이 망원의 빵집들을 나열하며 찬양했을 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망원에 맛있는 빵집들이 많구나 하고 알았다.

여러 번 마음은 먹었다. 주말마다 집을 보러 망원에 갔을 때, 페인트칠하느라 여전히 주말마다 망원에 갔을 때 집에 가기 전 슥 들려서 사 오지 뭐 했다. 하지만 집 보러 다니는 일은 페인트 칠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내게서 가져가 버렸고, 그래도 한 번은 싶어 근처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던 날은 가게 밖을 넘어 길 반대편까지 늘어선 줄을 보고 눈이 동그레 져 빵을 먹고 싶었던 적도 없었던 사람처럼 인파를 지나쳐 걸었다. 망원에 이사를 온 후에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위해 줄을 서 본 게 언제더라. 그러던 어느 초여름, 망원동 빵집 중 한 곳이 온라인 캐치테이블을 시작했고, 온라인으로 번호표를 받은 다음 내 차례에 얼추 맞춰 빵집에 가는 일은 귀찮아서 그렇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치테이블 웨이팅이 시작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춘 뒤 웨이팅 등록에 성공했고, 이런 온라인 웨이팅 자체가 처음이라 느릿느릿하다 보니 그래도 거의 시작하자마자 등록했음에도 약 2시간 뒤에 방문이 가능한 순번을 받았다. 정말 대단한 빵집이야.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무슨 빵 살지 검색에 조금 더 집중하기도 하면서 2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빵집에 갔다. 빵집은 아주 작은 와중에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작은 창 너머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빵집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어 아무도 재촉한 사람은 없지만 나 혼자 마음이 다급해져 미리 훑어봤던 빵들 중 눈에 먼저 보인 빵 2개를 호다닥 집어 계산했다.



황치즈 소금빵과 피스타치오 크림빵. 나는 어지간해서는 순정파이기 때문에 치킨도 항상 후라이드를 먹고 크로플 같은 변종은 친구들이 시킬 때나 먹지 내 의지로는 아마 영원히 사 먹지 않을 테고 그래서 소금빵이면 소금빵이지 왜 황치즈를 끼얹었나 싶어 거의 즉각적으로 반감이 들었으나 창밖으로 보이는 대기 인원에 마음이 급해 나도 모르게 계산을 해버렸고 이날부터 나는 황치즈에 미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변종들을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빵을 샀을 뿐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보다 유연한 시각까지 얻게 된 것이다. 소금빵 안을 꽉꽉 매운 단맛과 짠맛이 공존하는 황치즈 크림은 가히 아름다웠다는 말로 부족했고, 크림으로 인해 소금빵의 생명이라 생각하는 버터 동굴이 부재했으나 그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날은 정녕 빵을 사기 위해 반차를 쓴 것인가 싶을 만큼 빵 사는 것 이외에는 놀라우리만치 별달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오후를 보내기도, 폭염에도 멈출 줄 모르던 빵 사랑에 그나마 웨이팅이 덜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기도, 점점 더 다양한 빵을 탐닉하며 생전 입에도 안 데던 맘모스빵과 베이글 샌드를 위해 1시간 웨이팅에 도전하기도 했다. 빵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냉장고에 다 떨어지면 허전한 게 흡사 빵과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여름과 초가을 내내 기껏 단식으로 탈출했나 싶었던 복부비만을 다시 얻은 건 아닌지 긴가민가 할 정도로 전례 없이 빵에 열정을 불태웠기에 현재는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내심 나는 알고 있다. 완전한 진화는 결코 아님을. 아직 소금빵 성지라는 M 빵집과 장발장이 훔친 빵이 이 빵일 것이다라는 H 빵집, 각종 치즈케이크의 향연이 펼쳐지는 숫자 빵집 등 가보지 않은 빵집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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