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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Jan 23. 2021

백수가 되기에 완벽한 타이밍

이럴 줄은 몰랐지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딱히 무언가 불만족스러웠다거나, 스트레스가 막중했다거나, 사람들이 싫었거나 하진 않았다. 아, 싫은 사람이 한 명 있긴 했다. 내 인생 최악의 비치. 그래도 그 비치 때문에 그만둔 것은 아니다. 나의 퇴사가 그년을 기쁘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때때로 치미는 퇴사 욕구를 참아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퇴사를 결심한 순간 그년의 기분 따위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호텔에서 근무를 했다.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었지만 스케줄 근무로 매번 들쭉날쭉 쉬다 보니 쉬어도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20대 중반에 호텔 업계에 입사 후 단 한 번도 명절, 크리스마스, 새해 전야에 쉬어본 적이 없었다. 지독하리만큼 운이 지지리도 없는 스케줄만 걸렸다. 웃으며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투숙객들을 맞이했지만 나는 그다지 메리 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들.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샤워하고 가까스로 침대에 누워 기진맥진한 채 맞이했던 새해 첫날. 서른을 목전에 앞둔 29살의 어느 가을, 올해 연말 또한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쑥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며칠 고민은 했던 것 같다. 진즉에 만료된 어학 성적은 어쩔 것이며 재취업은? 자소서는 도대체 어떻게 썼더라. 면접 복장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결국 에라, 모르겠다 불쑥 퇴사하겠다고 저질러버렸다.     


나는 내세울만한 스펙이라 할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이 서울 땅덩어리에 나 하나 일할 곳 없을까 하는 알 수 없는 배짱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일하던 호텔이 문을 닫아 첫 번째 직장에서 해고 아닌 해고를 당했을 때도, 하나 있는 남자 동기는 연봉 인상해준 것을 알고 있는데 나에겐 동결이라기에 더럽고 치사해서 두 번째 직장을 박차고 나왔을 때도, 지금 이렇게 그만두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미래의 내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 철썩 같이 믿어왔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미래의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재취업이야 얼마든지 언제든지 가능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연차를 쓰지 그랬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호텔에서는 연차를 내가 원하는 날짜에 쓰기 힘들뿐더러,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에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가는 지금 제정신이긴 한 거냐고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을 것이다. 이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상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를 유니폼을 입은 채 보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20대의 마지막 연말은 호텔에서 벗어나 보자 싶었다.      


백수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한 세 달쯤 발리에서 살다 오려고 했는데, 발리는커녕 서울 내 발리 음식점조차 마음 편히 가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좋으나 싫으나 회사에 찰떡같이 붙어있는 건데. 하여간 주식을 샀다 하면 파란불로 바뀌고 치킨 한 마리 사 먹을 돈에 만족해 팔았다 하면 폭등해버리는 타이밍 선택의 귀재 아니랄까봐 아주 완벽한 타이밍에 사표를 냈다.


내 커리어의 전반을 차지하는 여행, 호텔 업계는 코로나로 인해 직격타를 맞았다. 이제 내 노력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언제든지 재취업을 하게 될 가능성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백수가 된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었지만 내 계획과 의지에 상관없이 백수 신분이 계속 연장되고 있는 중이다. 내 서른 살이 이럴 줄은 몰랐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선택의 여지가 없다. 피할 수 없는 이 어쩔 수 없는 백수 생활, 무엇이라도 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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