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네가 계속 걷고 있으면 좋겠어

by 강숲





교실 앞문을 지나 배식대로 향했다. 다른 식판들 위로 내 것을 포개고 복도를 걸었다. 3층에서 2층으로, 그리고 1층 중앙현관을 지나 건물 밖을 나왔다.

햇볕이 쨍하고 운동장을 내리쬐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남자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어 밖은 먼지로 뿌옇게 덮여있었다. 운동장 전체를 크게 휘감고 있는 빨간색 달리기 레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말 시끄러웠지만 걸음에 집중하다 보니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둘 지워져 갔다.

주머니에 손을 쿡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MP3를 교실에 놔두고 온 것이었다. 초조해졌다. 그때 노란색 짙은 먼지들 사이로 어떤 형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실루엣은 조금씩 커져갔다.


“자, 여기! 책상 위에 그렇게 올려놓고 다른 애가 훔쳐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잔소리하는 척했다.

나는 민혜의 손에서 이어폰 줄이 돌돌 말려있는 빨간색 MP3를 홱 하고 채갔다. 엉켜버린 줄을 풀려고 애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럴 땐 고맙다고 하는 거야.”

순간 움찔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렸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그 부위를 때려대는 기분이 들었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지석아, 괜찮아?”

“무슨 상관이야.”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아프지?”

그녀의 말투, 표정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당장 그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아주 어렵게 뒤돌아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 방해받는 거 싫어하지? 너는 너 혼자서 걸어. 나도 혼자 걸을게. 그 정도는 괜찮지?”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붉은 레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녀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미처 엉킨 줄을 다 풀지 못한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틀었다. 어쿠스틱의 잔잔한 소리와 함께 비틀즈의 ‘Yesterday’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정신없이 걸었다. 곧 예비종이 울렸다.

“이렇게 같이 걸으니까 좋네!”

민혜는 건물 안으로 웃으며 들어갔다. 나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 나는 가방을 재빨리 싸고 학교 앞을 나섰다. 흙탕물처럼 어질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2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인적이 전혀 없는 들판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있으면 세상과 완전히 차단될 수 있었다.

“지석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헥헥거리며 나를 쫓아온 것이었다.

“왜?”

“너 치사하다? 내가 네 MP3를 갖다 줬는데 아무런 보답도 없어?”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너 어디가?” 그녀가 물었다.

“집” 나에게 들판은 집과 다름없었다.

“어느 쪽이야?”

“저쪽”

“나도 저쪽인데 너 같이 가는 거 싫어하지? 너 먼저 가.”

나는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로수가 차가운 바람에 흩날. 청록색 잎들은 나뭇가지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엉킨 이어폰이 꺼냈다. 계속 손을 꼼지락거려봤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았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뒤통수에 눈이 달린 듯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눈앞에 빌라들은 단독 주택으로 바뀌어 갔고 주변의 사람들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저 멀리서 들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들판은 샛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태양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땅 전체를 비췄다.


“너희 집이 여기야?” 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 귀에 전해졌다.

“왜 계속 따라와?”

“그냥”

그녀는 발걸음을 빨리하더니 어느새 나와 나란히 걸었다.

“여기 진짜 예쁘다. 너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야?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알았으면 벌써 와봤을 텐데.”

그녀는 양팔을 쭉 들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있잖아. 네 MP3 속에 있는 노래들을 듣고 싶어. 나도 음악 진짜 좋아하거든. 발라드, 팝송, 클래식 다 좋아해. 사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로 상도 탔었어.”

그녀가 내 방 문턱까지 다가왔다. 그곳은 철저히 나만의 공간이어야 했다. 그녀 이전에는 아무도 나를 귀찮게 사람이 없었다. 나를 계속 괴롭혀대는 그녀가 싫고 싶었다.

“지석아, 괜찮아? 왜 그래?”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내 쪽으로 쭉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많이 아프구나. 미안해. 너 계속 걸을래? 나 돌아갈게.”

“가지 마.”

그 한마디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서 툭하고 튀어나왔다. 볼이 뜨겁게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 말을 당장 주워 담고 싶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들판 끝까지 말없이 걸었다. 숲 입구에 갈색 벤치가 보였다. 우리는 거기에 나란히 앉았다.


“저쪽은 숲이네? 왠지 무서워. 여기가 딱 좋은 것 같아.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딱 중앙. 어디든 볼 수 있잖아. 음악 듣기 제일 좋은 자리인 것 같아. 넌 누구 노래 좋아해?”

“비틀즈”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탕과자 이름 아냐? 하하” 그녀는 혼자 키득키득거렸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나는 동네를 걷다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실내로 들어가서 알바생에게 물어봤다. 비틀즈의 음악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MP3를 산 이후로는 그 밴드의 음악 외에는 어떤 노래도 듣지 않았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이국적인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다른 우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좋았다.

“그 비틀즈 노래 들려줘” 그녀는 내 바지의 오른쪽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MP3를 가리켰다.

나는 그것을 꺼내 엉킨 줄을 풀려고 했다.

“이리 줘봐. 내가 해줄게.” 그리고는 순식간에 풀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Yesterday'를 틀었다.


그녀는 이어폰 한쪽은 자신의 귀에, 나머지 하나는 내 오른쪽 귀에 쿡 찔러 넣었다. 익숙한 소리가 숲과 들판에서 넓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 노래에 집중했다. 같은 노래가 3번 재생될 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래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