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언제부터였을까. 하루가 무심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아침이 와도 새롭지 않고, 저녁이 되어도 아쉽지 않은 날들. 눈앞에 펼쳐진 일상이 마치 낡은 책의 한 페이지처럼 느껴질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가.
한때는 모든 것이 처음처럼 반짝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는 버티는 시간이 되었다. 살아내는 일에는 능숙해졌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실험을 하기로 했다.
군산으로 돌아왔다. 개항 100년이 넘는 항구 도시. 근대의 흔적과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곳을, 시인 안도현은 “오래된 책 표지” 같다고 표현했다. 그의 시 <숭어회 한 접시>에 등장하는 도선장, 포장마차, 백열전구, 심지어 혁명이라는 단어마저 오래되었다. 오래되면 낡고, 낡으면 사라지는 것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오래됨이 이 도시를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주말이면 군산의 구도심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용하던 골목마다 낯선 시선이 스며들고, 도시는 막 깨어나는 것처럼 숨을 고른다. 겉으로는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 공간을 통해 시간을 더듬는다. 근대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동시에 자신의 현재를 감각한다. 오래된 도시는 거울이 되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그렇게 사람들은 오래됨을 해석하며 새로움을 얻는다.
이제야 알겠다. 오래됨은 낡음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움은 다른 것으로 갈아치우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시선의 미세한 이동이라는 것을.
오래된 도시가 새로울 수 있다면, 오래된 나의 일상도 달라질 수 있다. 반복되는 하루, 익숙한 골목, 무뎌진 감정. 그 안에도 분명 나를 새로움으로 이끄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꼭 ‘군산’ 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진짜 실험은 늘 내 곁에 머무는 이 ‘오늘’이라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늘 있는 얼굴로 다가오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가장 가까운 시간이면서, 가장 낯선 공간. 우리는 그 안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지나친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문장 하나, 느려진 한 걸음, 맑은 바람 한 줄기만으로도 그 문이 열리곤 한다.
그것이 나의 작은 실험이다. 낯선 문장을 읽고, 익숙한 길을 걷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글을 쓰는 일. 그 단순하고 조용한 반복 속에서 하루의 감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미세한 틈에서 알아차린다.
삶을 새롭게 만든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내 안의 오래된 시선을 조금 옆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담기는 글은 어떤 변화의 결과가 아니다. 새로움에 이르기 직전, 아주 작은 징후에 대한 기록이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어딘가 다르게 꿈틀거리는 그 순간을 붙잡으려는 시도이다. 그러니 커다란 결심은 필요 없다. 오늘이 어제와 조금 다르게 느껴지면 된다. 그 다름이, 우리의 삶을 서서히 바꿔 놓을 것이다.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오늘은, 같은 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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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날마다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새로워질 것이고, 나날이 새로워지면 나 자신이 또 새로워질 것이다. (전호근, 장자강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