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
오늘 아침 두 개의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래서 브런치를 연재하는 화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일상, 이겨내라. 견디어라….”
수도 없이 다그치며 쏟아지는 이 메시지를 들었다.
정말 괜찮은 글쓰기 주제, 느닷없이 솟아난 영감이었다.
너무 선명하고 생생해서 이대로만 쓰면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 듯했다.
그런데 꿈이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근사한 아이디어였는지, 그만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늘 허무해지는 것처럼,
‘지금 당장 쓰자’는 두근두근한 흥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주제는 평소 하도 많이 들먹여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고루한 ‘글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되짚어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꿈에서까지 ‘글쓰기’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혹은 얼마나 고민스러웠기에 그 바쁜 잠 속까지 따라왔을까.
“나는 왜 이토록 글을 써야만 한다고 느끼는가?”
오늘 아침 유튜브 알고리즘이 뜻밖의 사고를 쳤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내 욕망을 간파한 때문인지, 평소 이광수 대표의 말에 귀 기울였던 탓인지,
유튜브는 ‘이재명 대통령 시대, 역대급 부자되는 로드맵 공개합니다’ 영상을 소개했다.
안 볼 도리가 없다.
이광수 대표의 주장도 설득력 있다.(죄송하게도 시간 관계상 앞부분만 봤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늘 경제 성장률보다 자본 수익률이 높았다는 피케티 자료를 보여주며,
이내 투자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농부들이 수확 후 남은 곡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튼튼한 창고에 저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는 곡물을 이용해 돼지를 키우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투자는 돼지를 키우는 일, 즉 번식하고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기막힌 비유이다.
이 설명을 들으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글쓰기는 돼지를 키우는 일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우리는 모두 ‘시간’을 경작해 하루를 살아낸다.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해야 할 일을 해낸다.
그렇게 나는 하루의 곡식을 수확한다.
그런데, 하루를 다 썼다고 생각한 후에도 어디선가 남는 시간, 작은 잉여가 생긴다.
TV를 보기엔 짧고, 누우려니 아까운 바로 그 시간 – 그게 잉여 곡물이다.
저장은 있는 것의 보존이 아니라 실은 사라짐이다.
필요할 때 창고문을 열다 보면 곡식은 줄어들거나 그냥 두면 썩는다.
곡식의 소비, 즉 시간의 소비는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장면이다.
SNS를 뒤적이거나 하염없이 펼쳐지는 숏츠를 즐감하며 잉여를 소비한다.
누군가는 그 남는 시간으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다.
처음엔 작고 연약하지만, 꾸준히 시간을 주고, 정성 들이면 돼지는 자란다.
돼지를 키운다는 건, 시간을 ‘살아 있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다.
당신의 잉여 시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신에게 남는 시간은 매일 아주 조금씩 나타난다.
그건 썩는 곡식이기도 하고, 잘 키우면 커지는 돼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질문은 곡식을 쌓아둘 것인가, 돼지를 키울 것인가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돼지는 무엇인가?
누구는 투자라 말하고, 또 누구는 그림이나 음악, 운동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그 돼지, 그 생명을 ‘글’이라 생각한다.
돼지는 곡물을 ‘소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번식하고 증식하며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잉여 시간을 들여 쓴 한 문장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다.
다시 새로운 문장을 낳으며, 글은 자란다.
그런데 하필 돼지가 글인가?
이미 말했듯 나는 글이 돼지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글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
주관적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블로그와 브런치 세계관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신이 다루는 주제가 각양각색이어도
표현 방식의 종착지는 ‘글’이란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는 텍스트로 이뤄져 있다.
글은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다.
글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나를 대변하고, 내가 느낀 나만의 생각을 산출하는 일이다.
나만의 생각을 외부 세계에 ‘번식’시키는 유일한 방식이다.
공동체와 교감하고, 독자라는 ‘타자’를 돕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내가 평소에 써 둔 이 글을 붙이고 싶다.
쓰기에 초점을 두고 읽으시되, 읽기도 곁가지로 살펴보시라.
쓰기와 읽기는 원래 한 몸이니 함께 읽으셔도 좋다.
내가 책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를 읽기 위해서다. 저자의 text로부터 내가 찾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앎이 아니라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나와 저자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 약간의 긴장감이 존재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를 읽고, 저자를 포함한 타인의 생각을 들으며 사회와 세상을 읽는다. 불필요한 정보가 판치는 세상에서 책은 비교적 정갈하게 정리된 생각의 모음집이다.
내가 글 쓰는 이유도 분명하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미 세상에 쏟아진 수많은 어휘들, 누군가의 해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정보들. 그것으로 나를 대변하고 싶지 않다. 내가 느낀 나만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느낌을 솔직하게 산출하고,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다르다)'라고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커다란 도전이지만, 즐거운 성취이기도 하다.
읽기와 쓰기는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읽기와 쓰기는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를 돌아보며 내 느낌과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나타내는 작업이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의심하되 한편으로는 인정하며, 지속적으로 나를 깨우쳐가는 '지나치게' 느린 자기 혁신 작업.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만나는 이 과정이 우리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모두의 변화 모델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이것이다. 읽기와 쓰기를 어떻게(How) 할 것인가. 그대만의 답이 필요하다.
자 그러하니 우리의 글쓰기는 소중하다. 꿈에서까지 글쓰기가 나타나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전하는 소식에서 글쓰기 비유를 생각할 만큼 나의 최근 관심사는 글쓰기에 빠져 있다. 아니, 오늘도 돼지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축사는 최신 설비가 아니고, 돌보는 사람은 나 혼자고, 이제야 돼지 새끼 한 두 마리 껴안고 죽을똥 살똥 그러는 중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저 돼지가 나에게 종잣돈을 마련해 주려니, 돼지 새끼 팔아 등록금 만들 듯 아이들 집 구하는데 도움 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한다.
이 대목까지 읽으며 나도 함 글쓰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 생각 드는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다. 이미 블로그와 브런치 통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표현에 막힘이 없으니 그분들은 제외하고, 정말 막막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드리자면….
글쓰기를 시작하는 첫걸음은 책 읽기라 말씀드리고 싶다. 쓰기의 아웃풋은 읽기의 인풋, 생각하기의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는 만들어 낼 수 없다. 누차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나만의 주장이 아니다. 이 주장을 들어보고 싶으신 분은 지금 연재하는 “읽기의 기술”을 참조해 주시라.
그 가운데서도 ‘탐색-발견-적용’의 프로세스, 읽기의 ‘1,1,1’ 방법 등을 활용하면 도움 될 것이다. 다만, 더 좋은 효과를 거두려면, 튼실한 돼지로 키워 번식하고 증식에 이르려면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팁은 이것이다. 혹자는 그 시간을 ‘10년 법칙’, ‘1만 시간’으로 말한다. 시간의 양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어마어마한 양에 놀랄 수 있다.
그러지 마시라. 우리는 여기에도 ‘읽기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 앞으로의 1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살아온 10년, 1만 시간의 여정, 세상에서 유일한 자기만의 삶을 꼼꼼하게 해석하고 이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자. 처음에는 성에 차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돼지는 차차 통통해질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전하고 글을 마쳐야겠다.
글쓰기의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이 글의 끝에서 여러분이 귀 기울여야 할 말은 이것이다.
“여러분의 글쓰기에 용기를 내시라.”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겠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소 약한 마무리, 급마침이라는 우려도 든다. 이렇게 바라보자.
글쓰기를 하고 싶어도 글쓰기의 소질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다. 용기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고, 소질여부도 알 수 있고, 포기하지 않을 힘도 얻을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나 자신이 글 쓰는 데 소질이 없음을 발견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 써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나는 유명 작가가 되어 있었으니까.”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中)
이 더운 날씨에 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맙다. 모쪼록, 여러분의 여름에 읽기와 쓰기의 기쁨이 함께 하기를. 이제 '역대급 부자되는 로드맵'을 들어야겠다.
*다음 주 화요일(7.29) 연재는 뭘 쓰지?
*읽기의 기술 1
*읽기의 기술 2
*책소개
*이 글의 재료 2: 제목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