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존감 타령 그만 좀 하자.

진부할 뿐 아니라, 틀려 먹었다.

by 리미아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라는 건, 왜 덥지? 응 더워서 그래. 정도의 말 밖에 안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자존감'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진술이 나온다. 동시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아래와 유사한 발언을 한다.


"자존감이 적당하게 잘 형성된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실체와는 별개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가며 전전긍긍 살아간다."


이 진술은 자존감에 대한 정의지, 인과관계를 기술한 게 아니다. 이건 그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특성을 지닌 사람을 편의상 자존감이 높다고 표현한다" 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잘못 읽으면, "먼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야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또는 "자존감이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전긍긍 살아간다"가 돼버린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건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전전긍긍 살아가는 건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가 된다.


그런데, 자존감이란 개념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실체가 없다. 적응에 유리한 성격 특성이 있어서, 그 특성을 간단히 부르기 위해 심리학자 한 명이 개발한 단어 나부랭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신기루 따위가 모든 웰빙의 선행조건이 돼 버리니, 웰빙에 도달할 리가 만무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실제 자존감이란 단어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는 일상의 순간순간의 불행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고착화하는, 사회적으로 매우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신이 어떤 바람직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내가 이러는 게 아무래도 자존감이 낮아서인 것 같아."하고 말한다. 본인 딴에는 진지한 분석일지 모르겠으나, 변명이다. 사람들은 자존감에 매달릴 뿐 아니라 그 뒤로 숨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높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전제에 기대면, 행동하지 않는 자신을 영원히 합리화할 수 있다. 아주 편리하다.


자존감이 어떤 특질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그 특질을 가능케 하기 위해 미리 갖춰야 할 덕목이라 이해할 경우, 우린 오히려 무력하고 나약해진다. 애초에 미리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의 이해가 만연한 데엔, 자의로, 타의로 자꾸 자존감에 대한 이런 잘못된 개념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사람들의 기여가 크다.


웰빙에 도달하는 데엔 자존감이란 매개가 필요 없다. 자존감이란 건 그냥 말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면, 먼저 자존감 높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된다. 전전긍긍하고 사는 게 불편하다면, 왜 그렇게 전전긍긍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곧장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을 보고 누군가가 자존감이 높다고 묘사할 것이다. 합리적인 자기 분석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자존감이 낮아서"는 절대 합리적 분석의 결론일 수 없다.


그러니 자존감 타령 할 바에는 운동이나 가든지 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쓰려면 뭐라도 매일 쓰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