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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May 31. 2024

모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안미옥 <홈>

 

 

 얼음의 살갗을 가진 얼굴도 있다

 녹아 흐르면서 시작되는 삶도 있다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도망치듯 사라져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무 탁자에 생긴

 아주 작은 홈

 

 이상한 기분을 가진 적 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가게는 멀리 있고

 

 심부름을 다녀오면 사라져버릴 사람과

 남아 있을 빈 의자

 

 한 손에 달콤한 사탕이 들려 있다 해도

 

 다음에 다시 만나,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왔다가 사라지고 왔다가 사라지는

 

 창밖에 다 녹을 만큼만 눈이 내렸다

 

 빛도 어둠도 없이

 막아서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화를 냈다

 우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이 같은 것이라는 걸

 몰랐다

 참을 줄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참았다

 

 모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모두에겐

 

 아주 무거운 상자

 무릎이 아픈 사람이 자주 무릎을 만진다

  

 빛은 찌르는 손을 가졌는데

 참 따듯하다


안미옥,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문학동네, 2023.


"홈 그리고 Home"


안미옥 시 <홈>을 'Home'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본문에서 '홈'은 "나무 탁자에 생긴/ 아주 작은 홈"이다. "물체에 깊게 패고 오목한 줄"을 뜻하는 홈. 중의적 표현이다. 집의 의미,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패인 상처를 홈으로 표현했다. 


"모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해석한 화자 '나'의 이야기다. 

아빠와 엄마는 자주 다퉜다. 아빠는 화를 내고 엄마는 울었다. 나는 내 방에 숨어 울음을 참았다. 엄마가 집을 떠났다. 엄마는 가끔 나를 만나러 집에 온다.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없다. 다시 만나자는 말도 없이 간다. 엄마가 나를 두고 가는 게 미안해서 내가 없을 때 간다는 걸 안다. 나는 또 울음을 참는다. 




<홈>을 읽고 떠오른 감상을 시의 형식으로 적었다.  


 숨바꼭질


 왜 하필 놀이공원이었나요

 떼써도 사주지 않던 토끼머리띠

 구슬아이스크림 쥐여주고 어디로 숨었나요

 

 어른이 되어도 끝나지 않은 숨바꼭질

 아이가 보채도 나는 놀이공원에 못 가요

 

 엄마는 어떤가요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갔나요

 토끼머리띠 구슬아이스크림도 사줬나요

 그 아이는 집에 데려갔나요

 

 엄마 주려고 남긴 구슬이 다 녹았어요

 난 언제까지 술래인가요


적어놓고 보니 이적의 노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이야기 같았다. 이적은 그 곡이 "사는 게 힘들어서 자식마저 버리는 일이 있었던 때 이야기"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마음으로 불렀다"라고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떠난 자의 변명이 아니다. 남겨진 자의 혼잣말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를 그냥 버린 건 아니겠지.‘ 자신을 위로하려 하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데 그럴듯한 이유라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고생하지 말라고, 더 좋은 부모 만나 잘 살라고 날 보냈겠지.'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야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아플 때마다 되뇌는 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가정의 달이 아픈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5월의 마지막 날에.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음 거짓말

(*)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우우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음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
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음

(*) 반복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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