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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Jun 07. 2024

슬픔은 다 같이 슬퍼야 견딜 수 있다

김명기 <유기동물 보호소>

 유기동물 보호소

 

 버려진 개 한 마리 데려다 놓고

 얼마 전 떠나 버린 사람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슬픔을 더 슬프게 하는 건

 시만 한 게 없지

 개 한 마리 데려왔을 뿐인데

 칠십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는다

 흰 슬픔 검은 슬픔 누런 슬픔

 큰 슬픔 작은 슬픔

 슬픔이 슬픔을 알아본다

 갈피를 꽂아 두었던

 시의 가장 아픈 문장에

 밑줄을 긋고 나니

 남은 문장들이 일제히 눈가에 젖어든다

 슬픔은 다 같이 슬퍼야 견딜 수 있다


김명기,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2022.


시 한 편 읽었을 뿐인데

집 떠난 개가 돌아와 짖는다


눈도 못 뜬 새끼였다가

촐랑대는 강아지였다가

다리 절고 떠났던 개가

멀리서 달려와 꼬리를 흔든다


잘 지냈니 해피야

말썽꾸러기 아들 키우면서

네 생각 자주 했단다


보고 싶었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키웠다. 이름은 '해피'. 아마도 시고르자브종이었을 거다. 오래 키우지는 못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해피가 집에 없었다. 도로에 뛰어들어 차에 치였다고 했다. 해피를 귀여워했던 동생도, 해피를 귀찮아했던 나도 엉엉 울었다.


대학 다닐 때, 동아리 선배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강아지 사진을 봤다. 가족 폴더에 있는 걸 보고 강아지 사진은 애완동물 폴더에 모아야 하지 않냐고 했는데,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가족 맞아." 선배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동물을 사람 아래로 생각하는 촌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순간이었다.




"순정한 연민"


<유기동물 보호소>가 실린 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는 4부로 나뉘어 있다. 2부의 제목이 "실려 가는 개들"이다. 유기동물에 관한 시 13편이 실려있다. 김명기 시인은 중장비 기사로 일하던 시절 공황장애를 겪고 유기동물 구조사로 전업했다. 그 시기에 이 시집에 실린 다수의 작품을 썼다. 그는 이 시집으로 제37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은 신경림의 『농무』다.


다음은 만해문학상 심사평이다.

"김명기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는 힘없는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버려지는 이 시대의 슬픔을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표현한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 모든 버려진 생명을 돌보고자 하는 마음과 폐기 처분되는 존재들에 대한 순정한 연민이 절절히 와닿는다. 과장된 감정 없이 존재의 밑바닥을 응시하며, 버려진 존재들의 슬픔을 개별적으로 감지하는 놀라운 감수성으로 천의무봉의 경지를 보여준 그의 시집을 만해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출처: 창비)


김명기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삶이 늘 우선이고, 시는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적 가치가 창작자의 정신 속에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인간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의 삶을 뛰어넘지는 않는다며, 늘 사람이 먼저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 우선이라고 했다.




김명기 시인의 시 <공터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를 읽고 <캐나다 체크인>을 떠올렸다. <공터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미국에 입양 보낸 유기견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글을 보시는 분은 그 시를 찾아보시면 좋겠다. (댓글에 시 전문을 옮겨 적었다.) 2022년 말에 tvN에서 방영한 프로그램 <캐나다 체크인>은 10년 넘게 유기견 보호 봉사를 해온 가수 이효리와 동료가 해외로 입양 보낸 유기견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들이 돌봐준 사람을 알아보고 반기는 장면에서 큰 감동이 있었다.


이효리는 동물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7년 여름, 2018년 봄에 방송된 <효리네 민박>이란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반려견, 반려묘와 보내는 일상을 볼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개와 고양이를 돌보며 치유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였다. 그 방송에서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과 차 안에서 들었던 노래가 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어려웠던 Khruangbin의 <White Gloves>. 미국출신 혼성 3인조 그룹인 '크루앙빈(Khruangbin)'은 태국말로 '비행기'다. 그룹 결성 당시 여성 멤버가 태국어를 배우고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그룹명으로 정했다.


<White Gloves>의 첫 소절은 "She was a queen"이다. 그녀는 여왕이었다. 가사 뜻을 알기 전에는 이효리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만 생각했다. 제목 '흰 장갑'은 고양이의 흰 발을 의미한다. 'She'는 고양이였던 것. 죽은 고양이를 추억한 곡이다. "She was a fighter"라는 가사에서 전사처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흰 발, 검은 발, 누런 발로 뛰놀고 있을 우리 모두의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White Gloves> by Khruangbin

She was a queen
She had a house
She was a fighter
She was a queen

Had a good dude
Brought me a rabbit
She was a queen
Wearing white gloves

But she kept 'em clean
Classy Lady
But she wasn't quiet
She was a queen

One day she was gone
She died in a fight
Cause she was a fighter
She was a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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