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건강하게 살기'_3
피부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밀가루를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정말 ‘밀가루 끊기’만은 피하고 싶었다. 도대체 밀가루를 안 먹으면 무엇을 먹고 산다는 것인가! 앞이 정말 막막했다.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들을 떠올려보았다. 군것질로 틈틈이 먹던 과자, 쌀을 씹기 싫을 때 식사 대신 먹던 빵, 주말이면 ‘아점(아침과 점심)’처럼 종종 먹던 라면, 외식 1순위 메뉴였던 파스타와 피자, 비 오는 날이면 특히나 생각나는 전, 굽고 찌고 국이나 전골로 만들어도 순식간에 먹을 수 있는 만두, 기름을 담뿍 담고 있는 튀김 등. 어쩌면 추억보다 더 강력할 ‘습관’이 되어버린 음식들을 멀리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치 내 일상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밀가루를 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유명한 사람들 중에 밀가루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나? 상실감을 가득 안고 검색을 해보았다. 밀가루를 끊은, 존경해 마지않을 사람들이 많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이 검색어, 저 검색어 입력하고 정처 없이 인터넷을 헤매며 밀가루를 끊고 난 뒤 나의 일상을 상상해보았다. 사실 다 부질없는 짓이긴 하지만.
지난 9월부터 약 2달 정도 나는 밀가루를 멀리했다. 100% 밀가루를 끊지는 못했다. 치킨의 달짝지근한 향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허니브레드의 달달함과 계핏가루의 조화가 혀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과자 한 봉지 까먹어야 집중을 할 것 같은 상황일 때는 꾹꾹 참다가 먹었다. 굳이 횟수로 따지자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밀가루 끊기, 혹은 밀가루 멀리하기의 효과는 확실히 있다. 어디에선가 ‘밀가루를 끊으면 좋은 피부를 얻고, 성격을 버린다.’는 말을 봤는데 정말 그렇다. 특히 나의 얼굴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드름이 나고, 속칭 ‘개기름’이 끼는 지성 피부다. 그래서 화산송이 성분이 들어간 제품이나 갈바닉 이온 마사지기로 모공 청소를 했었다. 하지만 밀가루를 끊고 세안을 하니 이런 공을 들이지 않고도 마치 모공 클렌징을 한 직후처럼 뽀송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개기름도 확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불쑥 솟는 뾰루지도 줄어들었다.
어쩌다 밀가루를 먹는 날에는 괜히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밀가루를 멀리 하면 소화 기능이 개선된다는 뜻도 된다. 늘 밀가루를 섭취해왔기에 소화가 잘 되는지도 안 되는지도 몰랐었다. 밀가루를 멀리했던 초반엔 오히려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속이 훨씬 편안해졌다. 이제는 밀가루를 먹고 난 뒤 드는 왠지 모를 불편한 느낌이 싫어서 100% 밀가루 끊기에 도전해볼까 싶기도 하다.
밀가루가 든 음식을 안 먹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긴 하다. 하지만 골머리를 않던 피부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자 힘이 났다. 게다가 최근 아이슬란드의 한 호텔에서 10년째 썩지 않고 있는 맥도날드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을 전시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며 ‘저렇게 썩지 않는 성분들을 먹어 왔다니. 저런 건 안 먹는 게 낫지!’라는 확신과 용기도 들었다.
어쩌면 나의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밀가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원인을 찾으려고 정말 많이 애썼고, 스스로에게 각종 실험(?)을 했었더랬지. 현재는 밀가루를 피부 트러블의 주된 범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나의 피부는 감사하게도 상당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나는 그동안 밀가루를 문제없이 먹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체질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이 겹쳐 이래저래 탈이 났을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으실지, 만약 읽더라도 이 글의 주인공이 나일지도 모르시겠지만 매일 나를 위해 점심때 칼국수와 같은 ‘대놓고’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함께 피해 주시는 회사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