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14일 루르드 출발 생장 도착
루르드에서의 쉼을 마치고, 생장으로 떠나는 아침. 호텔 여주인인 마리아는 아이 등교를 위해 먼저 떠난 후였다. 마리아의 아버지가 루르드 기차역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얘기해 둔 터였다. 걸어서도 금방일 것 같은 거리를 커다란 배낭 때문인지, 루르드 역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루르드 역에서 마치 몇 주 후 다시 볼 사람처럼 인사를 나누고, 마리아의 아버지는 기차역 가판대에서 신문을 하나 사 들고 떠났다. 일 년이 지나 이 글을 쓰면서야 든 생각인데, 마리아의 아버지... 성함을 여쭤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기차역에 혼자 남은 나는 그제야 조금씩 배낭 하나 매고 낯선 땅에 나 혼자 있구나 싶은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설렘이 조금 더 큰 긴장감이었다. 루르드에서 생장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는 없었다. 1회 환승과 2회 환승이 선택지인데, 둘 다 바욘에서 갈아탄다. 바욘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 1회 환승은 기차 시간이 애매하게 일렀다. 그래서 두 번 갈아타더라도 조금 더 자고 가자 싶어서, 퍼, 바욘 2회 환승 차편으로 끊었다.
루르드 역에서 우선 퍼까지 가야 했다. 여기서는 생장으로 가는 사람을 만날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순례객보다는 배낭여행객처럼 있었다. 순례객이냐, 배낭여행객이냐가 겉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나 혼자, 마음가짐이 그러했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커다란 배낭을 멘 동양인 남성을 보았다. 혹시, 순례객인가? 한국인인가? 선뜻 물어보지는 못하고 곁눈으로 살피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화장실 가려 일어나던 차에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냉큼 ‘혹시 한국인이세요?’ 역시 한국인이 맞았다. 게다가 순례객도 맞았다. 그분은 바욘까지만 간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냅다 배낭을 좀 봐달라 부탁을 하고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혼자 다니는 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화장실에 가는 건 제일 고역이다.
기차를 기다리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야간기차를 타고 루르드로 왔다고 했고, 내가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하니 신기해했다. 그리고 곧 기차가 왔고 지정좌석제가 아니어서 우리는 편히 앉아 마저 수다를 떨었다. 퍼(Pau) 역에서 내려 다음 기차를 기다리다 또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마찬가지로 순례객이었다. 그녀 역시도 야간기차를 타고 루르드로 왔으며 오늘은 바욘까지만 간다고 했다. 얼떨결에 두 사람은 바욘 동행객이 되었다.
바욘역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곧바로 숙소로 가도 되었지만,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았고 또 나의 생장행 기차 시간도 남아서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두 사람은 파리에 도착해서 곧바로 야간기차 타고 온 터라, 아직 이곳의 식사가 낯설었다. 루르드에 머물렀기는 하지만 내내 숙소에서 주는 밥만 먹었던지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브레이크타임이어서 더욱 식사할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찾은 ‘카페 폴’ 예전에 런던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괜찮으면 저기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요기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흔쾌히 같이 가 주었다. 그리고 다가온 나의 생장행 기차 시간, 두 사람은 고맙게도 기차역까지도 함께 와 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