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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인상 되는 날의 풍경들

by 리유


매년 1월이 되면 사무실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사람들은 평소와 똑같이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 전화기 울리는 소리에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한다, 출력해 온 종이를 들척이며 뭔가 적기도 한다. 분명 늘 보아왔던 그런 모습들인데, 그네들의 얼굴에서 뭔지 모를 기대감이 엿보인다.


그들은 머릿속에는 아마 이런 질문들이 떠올려 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연도 고과는 뭐가 나왔을까? 기본 인상률은 정해졌다고 하는데, 나는 몇 프로나 오를까? 우리 부서 임원은 나에게 추가 인상을 해 주셨을까? 지금 연봉에서 몇 프로만 올라서 적어도 이 정도는 되면 좋겠다."


어쩌면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는 회사 시스템에서 작년 연봉계약서 조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인상률에 따라 예상되는 연봉을 계산해 봤을지도.






성과평가, 그리고 연봉인상률을 정하는 시즌. 1월이다.

담당 부서는 제철을 맞은 듯 업무가 풍년이다. 실무자는 독촉 전화를 돌리느라 연신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수백여 개의 부서에서 기한 내 결과를 제출하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에게 오늘까지, 아니 내일까지는 완료해 달라고 수어번 연락을 하는 것이다.

간신히 평가가 완료되면 고과 등급 비율을 산정해 본다. 등급은 곧 연봉, 즉, 회사의 돈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임원 보고서도 공들여 작성해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으로 누런 얼굴에 충혈된 눈, 굽은 등은 기본이다.


그 팀장의 몰골은 안 봐도 뻔하다. 내 부서 식구들 높은 고과 주려고 비율을 맞춰오지 않는 부서가 허다하다.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대로 임원진에게 보고했다간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되어버린다. 회사에서 정한 등급별로 직원들의 평가를 낮춰달라고 요청하고 또 요청해야 한다.


그렇게 CEO 승인까지 마쳐진 성과평가 결과와 연봉 인상률. 모든 정리가 끝나면 각 부서의 임원들은 팀장들을 한 명씩 부른다. 팀장 본인과 팀원들에게 부여된 고과와 연봉인상률을 '통보'할 차례다.


사무실에는 곳곳의 회의실 마다 두 명씩 들어가 있는 모습이 연출된다. 그 안의 분위기는 안봐도 뻔히 알겠다.

아마 고과를 통보받는 이들은 자신이 한 해동안 해온 일들이 숫자로 표현된 결과를 듣고 웃기도, 무표정을 짓기도 할 것이다. 고개는 끄덕이고 있지만 마음은 요동치고 있을게다. 그 요동은 즐거움인지 서운함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서운함이 10중에 7 이상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노력과 그에 대한 보상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할테니.



내 차례가 되었다.

상무님과 둘이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싱무님은 표가 그려져 있는 흰색 종이를 들고 계셨고, '김 팀장은...'이라고 입을 떼셨다. 결과는 고과와 연봉인상률 모두 생각했던 것 보다 높았다. 속으로는 '우왓' 을 외쳤으나 상무님 앞에서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감사합니다. 더 잘하겠습니다.'라고만 또박또박 대답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아마도 그만큼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으로, 팀원들의 결과를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이런. 내가 1차로 올린 평가대로 모두 반영되지가 않았다. 평균 이상의 결과를 받은 직원은 괜찮다. 문제는 그 미만인 경우다. 상대 평가이기에 부서 내에서 비교적 기여도가 낮은 팀원의 연봉인상률이 낮게 책정된 것이다.



이제 팀원들에게 내가 그들의 평가결과를 알려야 하는 차례다.

개인별로 잠시 미팅을 하자고 불렀다. 이 자리는 결과를 전달, 즉, 통보만 하는 시간이다. 사실 기반의 결과, 그러니까 고과와 연봉 인상률을 무미건조하게 전해야 한다.

높은 결과를 받은 직원은 활짝 웃으며 손뼉 치다가 한편으로는 또 다른 부담이 얹어진 듯 보이기도 한다. 반대의 직원은 눈앞에 놓인 테이블만 바라본 채 고개만 천천히 끄덕이고 방을 나간다.


참 아이러니 하다.

1년 동안 매 순간 생각하고 일한 것들이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즈음 숫자로 평가된다니. 그 결과를 받는 나도, 팀원들도, 또 각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누군가들도 마음 한구석이 뭔지 모르게 씁쓸할 테다.


어쩌면 직장에서의 평가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게에서의 장사는 매출로, 인플루언서는 팔로워 수로, 더 나아가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점수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점수에 보여진 숫자들은 각자의 노력들을 판정 짓는 지표가 되어버린다. 물론, 결과를 내기 위해 행해왔던 과정들이 평가자에 의해 충분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관찰된다면 그나마 괜찮겠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런 이상적인 모습은 거의 보아 오지 못했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아무튼 올해도 각자에게는 1년간 받게 될 연봉이 정해졌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서류들을 들척이고 뭔가 끄적인다. 상사에게 보고도 하고 동료와 이야기 나누며 회사 생활을 이어간다. 누구는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잘하고 싶은데도 뜻대로 되지 않아 조마조마해한다. 반면 어차피 비슷하게 받는 월급 힘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듯 설렁설렁 대충 일하는 누군가도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연봉인상이 확정된 이후 일주일 내내 일이 많았다.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업무량과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했고, 매일 15시간가량 자리에 앉아 일들을 해치웠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거나 힘들지 않았다는 거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열심히 일하게 만든 걸까. 일이 재미있었나. 아니면 내가 받은 고과가 합당한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인상된 연봉 때문이었을까. 역시 직장인에게 있어 최고의 당근인 돈의 위력이었던 걸까.


맞다고 결론 지어 본다. 으로 보여준 상사의 인정. 그 두 가지가 합쳐진 힘이 아니었을까. 이 힘이 얼마 가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동력이 된다는 건 수긍할 수밖에 없다. 아주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금방 소화되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당근이라는 녀석을 말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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