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후 이틀 연속 야근의 여파일까.
퇴근길, 운전대를 아무리 꽉 쥐어봐도, 고개를 좌우로 휘저어도, 눈썹을 위로 힘껏 끌어올려도 자꾸만 삼백안이 되어 버리고 만다.
두둑 두둑 차의 천장을 두드리는 묵직한 빗소리, 오디오북에서 흘러나오는 나긋한 성우목소리가 적절하게 버무려져 온몸의 세포들을 아래로, 아래로 늘어뜨린다.
안 되겠다. 오디오북의 정지버튼을 누르고, 오랜만에, 그러니까 지난여름 이후 처음 음악 앱을 켰다. 메인 화면에 보이는 ‘비 오는 날 플레이리스트’ 클릭.
둥둥칫, 딩딩, 띠링링.
보사노사 풍의 반주에 이상순과 선우정아 님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더해진다.
나의 최애 곡 ‘네가 종일 내려’ 다.
"문득 내다본 창문 바깥이 온갖 색깔로 물들어 아득하네
왜 몰랐을까, 오래 찾아 헤매던 꽃밭이 다른 어디도 아니고 바로 우리 집 앞에 있었네"
홀로 앉아 있는 이 공간의 모든 곳을 일정한 속도로 토독토독 경쾌하게 쳐 주는 빗방울, 좌우로 앞 유리창을 닦으며 박자를 맞춰주는 와이퍼, 빈틈없이 가득 메운 베이스의 울림과 기타 소리, 그리고 마음에 가만히 자리 잡는 가사들까지.
반갑다.
오랜만이다.
이 소리들, 공기, 느낌.
...
.
.
그러고 보니, 음악을 꽤나 즐기던 나였다.
학창 시절에는 전람회 노래에 꽂혀 야자시간마다 워크맨 속 테이프 줄이 늘어질 때까지 들었었다. 밤 12시에는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 라디오를 자장가 삼아 잠들 곤 했다. 대학시절 오가는 전철 안,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오가는 출퇴근 길 기타 소리에 매료되어 적재, 샘김의 노래를 무한반복 했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새롭게 시작할 힘을 주기도 한 음악들과 늘 함께 해왔던 것이다.
왜 이제껏 이 느낌을 잊고 있었을까.
아이들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너무 ‘잘해야 한다’는 것에 갇혀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게 아니었을까. 주어진 1분 1초도 헛투르게 흘려보낼 수 없다고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해왔던 건 아니었을까.
가끔은, 이렇게 여유도 있어야 하는건데.
새벽부터 밤까지 매 순간 긴장과 함께 아둥바둥 살아내온 내 모습이 책장 넘기듯 스쳐 지나간다. 이내 눈가가 따스하게 데워지더니, 창 밖으로 보이는 차의 불빛들이 동그랗게 번진다.
그렇게 한동안 음악소리에 온전히 기대어 있다, 손을 들어 어깨를 톡톡 두드려 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으로 말해본다.
'잘하려고 하는 거 알고 있어. 애쓰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 가끔은 잠깐 멈춰도 돼. 쉬어도 돼. 그래도 괜찮아.
바쁘게 살다 보면 또 잊을지도 몰라. 이렇게 쉼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야.
그냥, 한 번씩 떠올리면 좋겠어.
비 오는 날 차 속에서 우연히 들었던 이 음악과, 네가 너를 토닥이며 건넸던 말들을.
그리고, 너, 지금 정말 잘하고 있어. '
*사진출처 - pixabay
퇴근 길 차 안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노래를 듣다가 떠오르는 감정들을 날것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비가 와서 인지 글이 센치하기도, 좀 유치하기도 하네요^^;
이렇게 다짐을 해 봐도, ‘잘 하려는’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 앱은 또다시 자주 사용하지 않는 파일로 이동해 있을 것이 뻔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남기면 조금은 더 기억하..겠죠?^^
우리 모두 각자의 쉼이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래봅니다.